전쟁은 승전국에게는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지만 패전국에게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고약한 일 가운데 하나는 패전국의 여성들이 승전국의 병사들에게 유린당하는 일. 실제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르러 승전국인 소련의 병사들이 패전국 독일의 여성을 몇 십만 명도 아니고 무려 2백만 명 이상을 유린했다고 역사학자들은 분석한다.

독일과 인근에 있는 헝가리나 폴란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련군의 마수가 이들 국가의 여성들에게 뻗쳤다. ‘아뉴스 데이’는 폴란드에서 소련군에게 유린당한 수녀들의 실화를 잔잔한 영상으로 옮긴 영화로, 당시 소련군은 일반인 여성만 유린한 것이 아니라 남자를 금기하는 수녀원까지 침탈해서 수녀를 임신시키고 만다.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 이미지

신과의 결혼을 서약한 수녀들에게 이는 죽을 만큼 수치스럽고 곤혹스러운 일이자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은폐 사항이다. 배가 불러오는 수녀들을 진료해 줄 의사를 찾는 일도 문제지만, 수녀들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을 입이 무거운 의사를 찾는 건 더 큰 숙제다.

이때 마틸드라는 프랑스 의사가 등장한다. 처음에 수녀들은 폴란드인이 아닌 이방인 의사라는 점을 못마땅해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방인은 ‘경계의 대상’이다. 나 혹은 우리와 가치관이 다르고, 피부색이나 인종, 국경이 다르기에, 우리의 의지에 동조되기를 거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이유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이방인, 외부인, 타자는 경계의 대상으로 구분된다.

여성이라는 젠더가 같다는 점을 제외하고 프랑스 의사 마틸드는 수녀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이방인이다. 수녀들은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이 분명하다. 하지만 폴란드 수녀들이 소련군에게 겁탈당한 것도 모자라 임신했다는 사실을 외부 세계에 폭로할 가능성이 높은 이방인이기에 마틸드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 이미지

하지만 마틸드는 이런 수녀들의 의구심과는 달리 수녀들에게 감정이입할 줄 알고, 이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여 같은 여성으로서 임신한 수녀들을 위해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선한 이방인’,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마틸드가 선한 이방인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에는 ‘남성의 잔혹성’, ‘남성의 야수성’도 한 몫 한다. 어느 날 밤 마틸드는 수녀들을 도우려 트럭을 몰고 가다가 한 무리의 소련군에게 겁탈당할 뻔 한다. 이런 간접 체험으로 마틸드는 임신한 수녀들이 얼마나 잔혹한 일을 당했는가를 몸소 이해하고, 수녀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아뉴스 데이’는 스크린에서 역설을 노래한다. ‘이방인의 역설’ 말이다. 이방인을 경계하던 수녀들이 이방인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영화 속 역설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나와 다른 이를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해야 직성이 풀리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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