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만 남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이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날, MBC는 박근혜 구속 소식을 여러 꼭지로 나눠 전한 뒤 뜬금없이 김수남 검찰총장과 박근혜와의 악연을 끼워 넣었다. 제(題)하여 <'30년 악연' 박근혜-김수남…임명권자 구속시킨 첫 검찰총장>.

참고로, 박근혜 구속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날(31일) TV뉴스에서 김수남 검찰총장과 박근혜의 사적인 인연을 엮어서 내보낸 곳은 지상파, 종편 통틀어서 MBC밖에 없다.

MBC는 30년 된 김 총장과 박 전 대통령의 인연의 시작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김수남 총장의 아버지 故 김기택 씨와 박근혜와의 악연에 앵글을 갖다 댔다.

3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당시 영남대 재단 이사장이던 박근혜가 '영남대 부정입학'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는데, 부정입학 의혹을 검찰에 진술한 사람이 바로 직전까지 영남대 총장이던 김수남 총장의 부친 故 김기택 씨였다는 것.

그로부터 19년 뒤인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김기택 총장은 당시 박근혜 후보 대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며 MBC는 둘 사이의 악연을 강조했다.

MBC는 또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당시 수원지검장이던 김수남 총장이 공교롭게도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했다"면서 여기에 "법조계에선 집안 간의 앙금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MBC가 '악연'이라고 강조한 두 집안 간의 갈등은 사실 이것이 전부다. 이후 김 총장은 - MBC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 수원지검에서 이석기 옛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재기에 성공하고,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뒤에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를 처리해 박 전 대통령 신임을 얻었고, 검찰총장에 올랐다.

3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그리고 김 총장은 "자신을 임명한" 박근혜의 신병처리 여부를 막판까지 고심하다가 "그 문제는 오로지 법과 원칙 그리고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문제"라면서 끝내 "자신을 검찰총장 자리에 앉힌 임명권자 대통령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앞서 인용부호로도 표시했지만, MBC는 "김 총장이 자신을 검찰총장 자리에 앉힌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구속했다"는 말을 짧은 문장 사이에서 두 번이나 거듭했다.

그리고 기사의 마지막 멘트는 이러했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은 이번이 4번째지만, 자신을 검찰총장 자리에 앉힌 임명권자 대통령을 구속한 것은 김 총장이 처음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MBC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박근혜 구속이 '법과 원칙'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검찰수사를 총지휘한 김수남 검찰총장과 박근혜와의 30년 악연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박근혜 구속은 김 총장이 박근혜에게 갖고 있는 해묵은 개인적 악감정의 발로라는 것이다.

나아가, 김수남은 상기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검찰총장 자리에 앉힌 임명권자인 대통령 박근혜를 끝내 구속시킨 역사상 첫 번째 검찰총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김수남 총장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제 주인에게 칼을 들이댄 무도한 배신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비난받아 마땅한 진짜 나쁜 사람은 박근혜가 아니라 '사적인 원한으로 무리하게 박근혜를 구속시킨 배신자' 김수남 총장이라는 게 <'30년 악연' 박근혜-김수남…임명권자 구속시킨 첫 검찰총장> 제목을 단 MBC뉴스가 행간으로 전하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3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창조적인 기사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MBC가 '박사모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방송사'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김 총장과 박근혜의 악연을 엮기 위해 김 총장의 부친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방불케 하는, 너무 무리한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이 우선 가능하다. 집안 간의 앙금이라니, 기사를 작성하자는 것인가 소설을 쓰자는 것인가.

또한 MBC 논리대로라면, 박근혜의 인사가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이뤄지기보다는 철저하게 박근혜 자신의 사적인 감정에 따른 정실인사였다는 점을 오히려 확인, 강화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 총장에게 오물을 뿌리려다가 박근혜에게까지 덤터기를 뒤집어씌우는 웃지 못 할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구속을 전하면서 비판의 초점을 국가를 사유화 하고 헌정을 문란케 한 박근혜에게서 김수남 검찰총장으로 이동시키려는 것은, 국회에서 탄핵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한 박근혜의 업적(?)을 너무 무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길 없다. 설마 박근혜는 순결무구하고 아무 죄도 없는데 나쁜 기획자들에게 억지로 엮여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동화 같은 주장을 펴자는 것인가?

글을 맺기 전에 MBC에게 고언한다. 뉴스 한 꼭지에 남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 할 창의성을 가미한 것은 좋으나 그 전에 필히 담겨 있어야 할 것은 공정성과 정확성이다. 아무리 박근혜가 좋다기로서니 사실을 전해야 할 뉴스마저 '창조뉴스'로 둔갑시키면 어쩌자는 것인가. 더구나 뉴스를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배설하는 통로로 이용하는 건 절대 범해선 안 될 죄악이나 마찬가지다. MBC는 김수남 총장의 사감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사감부터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