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세대 기획에 20대의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는 날이 채 50여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상기하는 기분은 뭐랄까, 무심코 들이킨 캔 커피에 아까 내가 버린 담배꽁초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같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쾌쾌함이다. 청춘이여, 그렇게 꽃 같지 않더라도 꽃이고 싶었던 날들이여, 그래도 계속이다~~ㅋ

보통 <말랑한 미디어>의 발제를 내가 한다. 고백하건데, 매번 주치기이다. 예비는 없다. 한 주 단위로 기획을 계속 해대고 필자를 찾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못'된다. 그나마 어설프고 진부한 기획을 찰떡같이 소화해 먹는 필진을 만나 고생을 덜어왔지만, 대개의 경우 한 꼭지 정도는 내가 맡아야 하겠구나 하는 비장감으로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을 보낸다.

그리고 그런 경우엔 거의 예외 없이 나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a4 두 페이지 내외를 채울 수 없는 소재를 겨우겨우 두들겨대는 박약한 글을 금요일에 부랴부랴 쓰고 만다. 나는 거의 매번 주말마다 그게 아팠지만, 일요일이라는 망각의 시간인 건너면 모든 것이 새로운 냥 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하며 20대의 끝자락을 근근이 버텼다.

▲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한윤형.
'Just it book' 이번 주 기획의 그럴싸한 제목이다. 각 세대별로 올 한해 가장 짜릿한 지적 욕구 혹은 나른한 희열을 선사했던 책을 꼽아보고자 했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20대의 책 읽기라고 하는 모호한 보기 안에서 그것의 대표성을 되는대로 실측해내야 한다. 그런데 나의 올해는 스무 살 이후 가장 책을 안 읽은 해이기도 하거니와, 굳이 분류하자면 '실용서'에 가까울 책들에 유독 손을 많이 댄 시기이기도 했다. <커피견문록>, <유럽맥주견문록> 같은 책들을 아주 즐겁게 읽었고, 굳세게 맘먹어도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들일랑은 아예 상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 닥치고 단 책들 중에서 고르려고 했다. 내심, 20대다운 아스트랄함을 과시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그렇게 대충 글의 얼개도 잡았었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 우연찮게 잡은 문고판 책을 읽고 바꾸었다. 근근히 버티지 말고 당당히 고백해보고자 한다. 무릇, 20대라면, 그것도 2009년의 20대라면, 게다가 글줄이나 써서 밥을 벌고 있는 이라면, 이 책에 대한 콤플렉스를 비껴가선 안 되겠다고 싶었다. 그 책은 바로 <우리 시대의 젊은 만인보>이다.

물론, 그러한 종류의 시리즈가 나왔다는 것은 진즉에 알았고, 개인적으로 어떤 이에겐 서평을 부탁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루마다 늘어가는 쟁쟁한 책들의 무덤사이에서 그 시리즈는 너무 작은 비석이라 선뜻 시선이 가지 않았다. 돌이켜 보건데 그 시간에 나는 소위 88만원 세대의 후속 담론이 인문 사회 서적의 주류로 부상한 것에 약간 혼미해 했었고, 제도권 매체의 서평들보다 블로거들의 촌평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저께 <우리 시대의 젊은 만인보> 시리즈 중에서 3번째인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한윤형)을 읽었고, 어제는 8번째인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김민하)를 읽었다. 미디어스 필진이기도 한 한윤형과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몇 차례 마주쳤었고 소주도 두어 차례 나눴던 것 같다. 김민하는 그의 오프라인 활동 영역을 생각해봤을 때, 언제쯤 어디 선가에선 분명 팔뚝질을 함께 했겠구나 싶다. 왜 뜬금없이 저자들과의 알량한 인연을 내세우느냐고?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고백할 나의 콤플렉스는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번듯한' 책을 내는데 주말을 근근히 버티는 부끄러움을 매주 잊으며 나는 뭘 했나 하는 것 말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나이, 세대, 성별과 상관없이 그들과 자신을 '비교'해보고, 관계를 '상상'해보고, 정이 마주칠 것이 없다면 나처럼 '질투'라도 해야 마땅할 정도로 그들은 탁월하고, 발랄하고, 흥미롭다.

이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도 그 동안 이래저래 써왔던 글들의 모음집일거라 생각했다. 보통 그럴 것이다. (이 보통 그럴 것이다를 섣불리 텍스트화했다가 곤혹 아닌 곤혹을 치른 이도 있었다.) 왜일까? 다른 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딱딱한 연상 체계에서는 젊은이가 자신의 얘기를 에세이의 형식을 빌려 쓴다는 것이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것이 설령 생물학적 나이와는 무관한 그의 사회적 경험과 특정 시기에 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김민하.
역설적으로 이 시리즈 기획의 빛나는 지점은 바로 이 점이다.(물론, 아직 전체 시리즈 중에 2권 밖에 못 읽었음을 양해 바란다.)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이 성립된 과정의 존재감을 스스로 풀이해내야 한다. 이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삶이야말로 민족의 정의로움과 국민의 후생스러움에 온전히 바쳤노라하는 설레발을 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이미 정답을 써낸 학생에게 그 과정을 완역해내라는 잔인함과도 같은 일이다. 물론, 보는 입장에선 유익한 일이다.

한윤형의 '키보드 워리어의 전투일지'는 조선일보 논술대상을 거부함으로써 기존의 '안티 조선 운동' 전체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었던 스타 고등학생이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재의 '88만원 세대의 일원'에 이르렀는가를 담담히 보여준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에서 운동 담론 혹은 논쟁들의 이동 경로를 적확하게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나치게 그를 중심으로 한 단면의 부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면, 그 과정은 그에게 삶 그 자체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 이외의 누구도 그 과정의 생성과 소멸을 그처럼 온 존재를 던져 기억하진 않는다.

김민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한윤형이 구조적으로 사회 운동에 접근할 수 있는 모종의 통로들을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해 김민하의 경우는 사회의 해부학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할 필요도 위치에도 있지 않았던 99%의 평범함에서 출발한다. 책의 초반부 게임에 관한 장광설을 풀어 대는 그의 내공을 읽고 있노라면, 대강 그가 어떤 캐릭터일지 그려질 정도이다. 그런데 왜? 그는 굳이 자신의 존재를 '운동' 이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삶을 윤택하게 즐길만한 기질을 갖고 있는 축복받은 인간이다. 그런데, 그냥 우연히 어찌 보면 지극히 이해할 수 없는 뭔가에 끌리듯, 추천사의 표현을 빌자면 ‘조선 좌파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로, 그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 시대의 큰 스승'으로 우뚝하다.

묘하게도 이 둘은 다분한 공통점과 확고한 동질감을 갖고 있다. 여전히 한윤형이라는 실명보다는 '아흐리만'이라는 불세출의 아이디가 더욱 확고한 것처럼, 김민하 역시 그의 이름 석자 보다는 '이상한 모자'라고 하는 그의 아이디가 더욱 선연한 느낌을 준다. 공히 그들의 오늘 정체성을 만들어 온 무대는 온라인이었다. 또 그 둘의 인생엔 '깨끗한 손'(2002년 당시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이문옥 후보 지지 사이트), '진중권' 그리고 '진보신당'이 겹쳐진다. 이 겹쳐짐은 그들이 재래적 학습에 의해 '운동권'으로 길러진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요약한다. 이건 결코 우연도, 예삿일도 아니다. 이는 이 둘을 통해 젊은 논객, 운동가의 활약상만을 감상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거침없이 선택한 그 젊음의 역량을 시샘할 수 있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88만원 세대 이후 온갖 사회적 질타를 받고 있는 한윤형과 김민하의 세대가 실은 그 윗세대의 보편성과는 상관없이 또 그 선배들의 문법에 대한 인지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채, 스스로 새로운 물결이 되어 이미 흐르고 있다는 사실의 목격이다.

기꺼이, <우리 시대의 젊은 만인보>를 권한다. 얇고 활자가 촘촘히 박혀 있는 책이 아니어서 금방 읽힐 것이다. 당신이 당신 이후의 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뭔가 만져지는 것이 있을 것이고 혹은 당신이 당신 또래의 누군가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에 자극을 원한다면 뭔가 울컥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흡사, 나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의 3번째, 8번째 주자이겠는가? 맘껏 부러워해라. 그리고 선하게, 다시 이를 앙 무는 거다. 우린, 아직 너무 젊잖은가, 꽃이고 싶은 날들은 계속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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