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은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여의도 주변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한 이후부터 오늘의 상황을 예상하느라 분주했다. 대략 일치하는 전망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게토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은 삼성동 자택을 중심으로 결집해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행보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선 레이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향력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으나 각 당은 대선후보 선출을 어느 정도 확정한 상태다. 바른정당과 정의당은 각각 유승민 의원과 심상정 대표를 이미 후보로 선출했고, 나머지 정당의 경우 경선이 진행 중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유력하다.

이런 판에서 변수가 될 만한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가 1대 1 구도를 만들 수 있는 이른바 ‘비문연대’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느냐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면 이들 입장에선 꿈에도 그리던 ‘어떤 정권교체냐’의 프레임을 가동시키는 게 가능해진다. ‘박근혜 정권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 속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프레임이 일부 허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각 대권주자들이 놓여있는 현재의 상태를 볼 때 이게 쉽게 될 것인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안철수 전 대표의 경우 ‘문재인 대 안철수’라는 구도가 이미 형성됐다고 보고 나머지 세력이 국민의당과 자신을 지지하는 형식으로 ‘비문연대’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여론조사 상에서 ‘보수후보 적합도’가 높다는 점을 들어 구 여권 지지층을 발판으로 ‘진보 대 보수’ 구도를 만드는 방안을 상정하고 있다. 홍준표 지사는 유승민 의원을 일단 주저앉히고 안철수 전 대표와의 단일화에 나설 수 있다는 뉘앙스를 흘리고 있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라고 할 만한데, 여의도의 정치부 기자들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김종인 전 의원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움직임이다. 출마를 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얼마 전부터 독자출마를 시사하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종인 전 의원과 가까운 최명길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것도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이들은 경제민주화 및 동반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노선을 전면에 내세우고 개헌을 주장하면서 ‘통합정부’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정치부 기자를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상 안철수 전 대표를 구심점으로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마저도 대중의 여론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비문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촉매 역할을 자처하기에도 벅찬 게 사실이다.

물론 ‘비문연대’의 대표주자로서 안철수 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와의 양자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대 안철수의 양자구도가 형성될 경우 안철수 전 대표가 소폭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선거 구도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의 결과라는 점에서, 양자구도가 확실히 잡히기만 한다면 안철수 전 대표의 추가 상승 여지를 전망해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양자구도 형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국민의당 일각에서는 호남 여론을 고려할 때 자유한국당과의 선거 연대가 어떤 형태로든 성사되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때문에 ‘유권자가 알아서 투표하는 단일화’를 최상의 수로 치지만, 이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수감에 고무된 보수층 유권자들이 결집할 가능성이 문제다. 이들의 표심이 한쪽으로 쏠려 15%에 근접한 득표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자유한국당 후보는 독자완주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왼쪽)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연합뉴스)

이런 저런 이유로 선거구도 변화에 진척이 없다보니 다소 어색한 상황도 벌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몸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의 입장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가 ‘정치적 불량품’으로 평가받게 된 이후 사실상 이명박 정권 인사들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신세다. 유승민 의원이 과거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3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게 대표적이다. 홍준표 지사도 같은 날 ‘식수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은 잘한 사업”이라며 이명박 정권의 치적을 평가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다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유리한 구도를 재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출소해 미국으로 강제추방된 BBK 주가조작 사건 당사자 김경준 씨의 예가 대표적이다. 김경준 씨는 이명박 정권은 물론 박근혜 정권도 BBK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경준 씨는 30일 LA공항에서 언론과 접촉해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적폐청산’은 구 야권의 언어다. 특히 문재인 전 대표가 최근 정권교체의 당위를 위해 자주 거론했다. 김경준 씨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하면 ‘박근혜 정권 청산’ 프레임은 ‘이명박근혜 정권 청산’으로 확대된다. 이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예상을 상회한다면 ‘비문연대’를 구성하겠다는 인사들이 내거는 ‘더 나은 정권교체’, ‘통합과 협치’ 등의 슬로건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비문연대’의 접착제(?) 역할을 해야 하는 인사들 중에 구 친이계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런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을 높인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홍준표 지사의 경우 2007년 당시 ‘김경준 기획입국설’을 제기한 당사자이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구 친이계와 직접적인 접점은 없지만, 그를 돕고 있는 바른정당 소속 인사들 중에는 구 친이계로 분류되거나 그들과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일부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친이계와 가깝다는 비난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보수언론이 ‘통합정부’니 ‘협치 연정’이니 하는 가치를 고리로 이슈파이팅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감하게 한다. 당장 조선일보는 30일 사설에서 “노선 정책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도 협치 연정의 시대로 가는 큰 비전을 담을 수 있다면 그런 정당 간 연대는 유권자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31일 사설에는 “‘통합정부’라는 당위성 자체는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며 “정책과 노선에서 차이가 있는 정당들이지만 북구(北歐)처럼 이슈별로 조정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 가는 정치를 우리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썼다.

반대로 말하자면 문재인 전 대표를 필두로 한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제는 누구를 반대하고 청산하는 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주장해 여기에 맞서야 할 필요가 생긴다는 뜻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이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고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데 성공한다면 집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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