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은 아니 응답하라 시리즈는 모두 즐거움이자 슬픔이었다.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은, 그만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그런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뜻하고도 촉촉함으로 남은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에 배우들이 간다면 과연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아마도 누군가는 <한끼줍쇼>를 보면서 상상했을 수도 있는 일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아주 긴 공백기를 깨고 컴백에 들어간 걸스데이의 혜리와 민아가 바로 응팔의 배경 동네 쌍문동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응팔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면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쌍문동에 덕선이가 온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덕선이와 택이 혹은 정환이였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말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 쌍문동 편

정작 쌍문동에는 처음 오는 것이어서 신기하기는, 보는 시청자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무척 들떠 보이는 혜리였다. 그리고 민아 역시 응팔의 팬이었을 것이니 함께 들떠 보였다. 물론 아이돌들은 워낙 방송에서의 리액션이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누군들 응팔의 팬이 아닐 수 없으니 민아의 모습은 흔한 자본주의 리액션과는 차별을 둬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덕선이와 함께하는 쌍문동에서의 <한끼줍쇼>는 분명 평소와 많이 달랐다. 잠들어 있던 추억세포를 일깨우는 응팔의 BGM들하며 응팔 세트라고 해도 깜빡 속아 넘어갈 것만 같은 리얼 쌍문동의 골목들. 거기에 적어도 그때는 걸스데이 혜리가 아닌 덕선이가 선 풍경은 다른 때에는 없었던 진한 추억이 있었다.

그리고 두 팀이 찾아간 집들이 어쩌면 <한끼줍쇼>가 가장 원하는 이상형에 근접한 모습들이었다. 먼저 성공한 쪽은 이경규와 민아였다. <한끼줍쇼>치고는 매우 이른 시각에 성공을 했는데, 이들을 맞이한 집의 주인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은 반겨주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 쌍문동 편

<한끼줍쇼>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을 요즘 방송을 보면 느낄 수 있는데, 이제 서울 주민들은 저녁 무렵만 되면 연예인이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지 않나 슬그머니 기다리는 수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럼에도 정작 쌍문동 덕선이는 민아보다 한참 뒤에야 집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예능신이 도운 것이라고 잘 포장해야겠지만.

그렇게 들어간 집은 45년 된 벽시계가 시간마다 종을 울려주는 오래된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45년의 세월을 충직하게 일한 벽시계가 이제는 힘겨운지 가끔 한 번씩 종치는 숫자를 빼먹는다는 사실도 그 집의 역사만큼 정겨웠다. 그런가 하면 다른 집은 3대째 쌍문동에 살아가는 이력을 보이기도 했다. 우연일까 아니면 쌍문동의 저력일까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 쌍문동 편

이 예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이번 주 쌍문동 편에서 더욱 확실해졌다. 이 예능은 도시민속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3일이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대단히 충실하게 해오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예능에서 그 기능을 수행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큐3일이 지나치기 쉬운 민간의 저녁밥상 풍경이라는 고정된 주제에는 단연 독보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강호동과 혜리가 찾아간 집 역시도 오래된 동네 쌍문동다운 집의 역사를 자랑할 만했다. 그 집에서만은 30년이지만 평생을 쌍문동에서 산 역사를 가진 가족이었다. 토박이가 되어가는 한 가족을 본다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그런 점들이 <한끼줍쇼>가 가진 숨겨진 공익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때보다 한 끼가 참 푸짐도 했고, 집밥이라는 것의 진수를 엿볼 수 있기도 했다. 24회에 <한끼줍쇼>의 완성형을 본 것 같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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