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라는 작가는 <추적자>라는 명작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시청자에게도 공히 인생작이 되었다. 소위 인생작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힘든 것인데 어쩌면 <추적자> 이상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인지라 시청자는 항상 박경수라는 이름에 매번 큰 기대를 얹게 된다. 통쾌하게 하지만 누군가에는 불쾌할 드라마. 박경수의 대한민국 부패 도장깨기, 이번에는 법조계를 겨냥한다.

이보영, 이상윤이 끌어가게 될 이번 드라마는 제목이 살짝 의아했다. 줄곧 남성적이라고 할까 어쨌든 강한 단어를 써왔던 박경수 드라마들과 달리 멜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렇지만 내용은 언제나 그랬듯이 피와 살들이 튈 것만 같은 살벌한 현실의 전쟁터를 삽으로 푹 떠다가 화면에 옮긴 느낌이다.

SBS 새 월화드라마 <귓속말>

한 해직 언론인이 1인미디어를 통해서 거대 부패조직의 비리를 추적하다가 결국 그들의 손에 의해서 살인 누명을 쓰게 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다. 신영주가 강력계 계장이지만 더 큰 손에 의해서 엮인 사건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이 사건이 양심적인 판결로 정평이 난 이동준(이상윤) 판사에게 배당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시쳇말로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신영주의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몰아간 큰손의 정체는 방산비리의 주범이고, 언제나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해주었던 거대 로펌이었다.

이동준은 신영주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로펌의 덫에 걸려 있었다. 로펌 대표 최일환(김갑수)은 신영주의 아버지 입을 막기 위해서 이동준을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가두었다. 결국 양심적 판사도 변할 수밖에는 없었고, 최일환이 원하는 대로 판결을 하고, 그의 딸과 결혼도 하고, 그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가장 원치 않았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강요일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일까.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 어려운 방정식에 신영주가 끼어들면서 드라마는 정의와 로맨스로 변주되게 된다. 법원에서 쫓겨난, 경찰에서 쫓겨난 잘못된 판결의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야기. 그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

SBS 새 월화드라마 <귓속말>

박경수의 드라마를 즐기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대사임에 틀림없다. 이번 드라마 <귓속말>도 예외는 아니어서 첫 회에만 무수한 명대사들이 쏟아졌다. 촌철살인의 대사들은 벼른 비수처럼 빛이 났다. 하나같이 현실을 꿰뚫는 명대사들로,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21세기 한국의 적폐를 다 알아버릴 수준이었다. 또한 캐릭터들을 단번에 설명하기도 한다.

이동준. 마음이 변하니 세상이 변하지 않는 거다.

최일환. 세월이 가르치고 세상이 길들여주겠지. 악은 성실하다.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으며 박탈하는 거, 그게 자네가 할 일이야

신영주. 피해자가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 그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불법과 손잡아야 하는 세상, 내가 만들었나요?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변한다는 웹툰이자 드라마였던 <송곳>의 명대사가 있다. 세상을 지키려고 무던 애를 쓰던 반항아 판사 이동준은 부정한 권력에 의해 굴복당하고, 포섭되어 마침내 서는 곳이 달라졌다. 이동준과 신영주는 과연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그 과정의 고통과 희망이 이 드라마의 핵심 관전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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