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촛불집회가 한창 무르익던 시기에 화제가 됐던 일이 있었다. 바로 KBS와 MBC 기자들이 취재조차 못할 정도로 시민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모습들이었다. 급기야 MBC는 집회 현장 근처에는 차도 대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지거나 아니면 리포터가 쥔 마이크에서 방송사 로고를 떼고 몰래 보도를 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 자랑스러웠던 MBC 모습이 어디로 갔나”

21일 검찰에 출두한 박 전 대통령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더 받은 문재인 더민주 후보의 한 마디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MBC <100분 토론> 중에 한 발언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한결같이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후보의 ‘작심하고 MBC까기’는 21일 사전녹화된 것이었지만 선거법상 편집을 할 수 없다는 상황을 다분히 활용한 전략적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문 후보는 자신에게 주어진 4분 중 3분을 오롯이 MBC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데 모두 사용했다. 대세론이 모아진 1위 후보의 여유였을지는 몰라도 토론보다 '망가진 MBC'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었다.

21일 오후 3시께 전국언론노동조합 김연국 MBC본부장과 대화 중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사진=언론노조 MBC본부)

이런 후보의 발언과 의지는 이미 상암동 MBC에 들어설 때부터 감지됐다고 할 수 있었다. 더민주 경선 후보들은 이날 토론을 위해 모두 상암동 MBC를 찾았다. 그때 후보들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MBC노조였다. 후보들에게 언론장악방지법 통과, MBC 정상화 등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벌였던 것이다.

노조원들의 손에 들린 피켓 중에는 “공영방송 정상화도 토론하십시오”라는 주문도 있었다. 네 명의 후보 중 노조원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문재인 후보는 노조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미안하다며 "아예 언론장악 방지법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 하자고 하는데 반드시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 조금만 더 힘내서 견뎌주시면 반드시 보람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토론에 들어가서는 전격적으로 MBC에 돌직구를 날리는 결기를 보였다. 그중 중요한 몇 가지를 추려본다.

“오늘 우리 후보들이 들어올 때 MBC 해직기자들이 피케팅하는 앞을 지나면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들은 적폐청산을 말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가 언론적폐 청산이다”, “MBC는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탄핵 반대 집회를 찬양하고 탄핵 다큐멘터리 방송도 취소했다”

MBC 시사프로그램 <100분 토론>

사회자(박용찬 앵커)가 여러 번 만류하고자 했지만 문 후보는 아랑곳 않고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MBC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라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몇 달째 대선후보군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대세 후보의 작심 비판에 아무리 MBC라도 뜨끔은 했을 것이다.

이명박근혜 9년은 분명 이 나라에 많은 적폐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바로 공영방송의 붕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사자방 의혹,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 등 모든 것들이 모두 언론의 침묵과 방조 속에 전개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의 MBC 비판은 곧 대통령이 된 이후의 정책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 한 의지라면, 그 의지를 갖고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무너진 공영방송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만은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언론이 제 역할이 하지 않고는 적폐청산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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