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가 폭탄이 될 것인가 불발탄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오늘자(22일) 조선일보는 판단을 유보했다. ‘조선일보답지’ 않게 “BBK가 시한폭탄이 불발(不發)한 것인지, 단지 폭발이 연기된 것인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며 운을 띄우고만 있을 뿐이다. 1면 제목이 <BBK, 폭탄인가 불발탄인가>다. 관련 사설도 없다. 숨고르기를 하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BBK가 폭탄이 될 지 불발탄이 될 지 어느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 대신에 부인 이보라씨가 회견을 대신했고 △공개할 것으로 예상했던 이면계약서 원본도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국면은 ‘헛방’이라는 한나라당의 반격과 ‘호흡조절’이라는 관측이 맞물리면서 의혹만 확산돼가는 양상이다.

▲ 조선일보 11월22일자 1면.
BBK ‘숨고르기’ 들어간 조선일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은 오늘자(22일) 아침신문들의 보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게중심과 방점은 조금씩 달라도 ‘한쪽으로 기우는’ 보도를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경준씨에 대해 ‘부정적 보도’로 일관했던 조선일보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이보라씨는 ‘이면계약서의 원본을 공개할 경우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친필서명을 변조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공개거부 이유로 내세웠다. 즉, 자신들이 먼저 계약서를 공개하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쪽이 이를 나중에 입수할 경우 이 후보가 친필서명을 변조해 검찰에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 수긍할 수 있는 논리지만 그래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오늘자(22일)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어차피 이들이 미국에서 이 원본의 전문가 검증을 거치겠다고 한 이상, 친필서명을 한 진짜 계약서를 갖고 있다면 공개 뒤 검증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 한겨레 11월22일자 4면.
이 석연치 않은 부분 때문에 오늘자(22일) 아침신문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두 가지만 추린다.

“당초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한국명 김미혜·43) 대신에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가 회견을 대신했고, 이면계약서 원본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김씨 측 주장이 결국 ‘헛방’이라는 한나라당의 반격을 받고 있다. 이면계약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아무것도 없이 허풍만 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김씨 측이 회견장 변경 과정에서 보여준 치밀함이나 검찰과 이 후보 측을 압박하는 발언들을 보면 한 방을 터트리기 위한 호흡조절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서울신문)

“가족들의 이런 태도는 자칫 이면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이 후보 쪽의 주장에 힘이 실릴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어 보인다. 김씨 가족들이 막판까지 이 후보 쪽과의 절충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한겨레)

한나라당 입장 ‘노골적으로’ 지면에 반영한 동아일보

대다수 언론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자(22일) 동아일보는 단연 ‘돋보인다’. 한나라당 시각이 노골적으로 지면 곳곳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LA회견, 그녀도 원본도 없었다>가 1면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언급돼 있다.

▲ 동아일보 11월22일자 1면.
“김 씨 가족은 BBK 사건과 관련해 계속 말을 바꾸고 있어 발언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씨는 당초 귀국 후 이 후보와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김 씨는 정작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조차 포기했고, 아내와 에리카 김 씨는 한국의 치외법권 지역인 미국에서 증거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주장을 계속 펴고 있다.”

동아는 4면 <사본 배부 안하고 보충질문도 안받아 / 참석자 “에리카 김 심리적 불안상태”>에서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와 김경준 씨의 ‘특별한 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던 김 씨 가족의 기자회견은 싱겁게 끝났다”면서 최근 에리카 김 씨와 통화했다는 한 인사의 말을 인용, “에리카 김 씨가 최근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경준측, 계약서 3개라더니 ‘한글 계약서’ 추가>(4면)에서는 아예 김경준씨측의 문제점을 반박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롭다. 동아 조선의 BBK ‘물타기 보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조선은 신중한 반면 동아는 ‘질러대는’ 형국이다.

김경준씨측이 이면계약서 원본을 23일까지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밝혔고, 이명박 후보도 진위를 가리기 위해 자신의 친필 서명을 제출하겠다고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결국 진위여부는 검찰 문서검증 작업을 통해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

오늘자(22일)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의 ‘신중함’도 바로 이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인데, 동아는 한 발짝이 아니라 몇 발짝 더 한나라당 쪽으로 ‘이동’했다. 확신에 가까운 걸음걸이인데 이것이 동아일보에게 ‘영광’이 될지 아니면 ‘부메랑’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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