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SBS <뉴스추적> '알코올 중독의 대물림'편의 한장면이다.

"두렵죠. 제가 아버지처럼 될까봐. 또 하나는 뭐냐면 제 자식이 미울 것 같아요. 아버지의 손자라. 이런 생각이 강했어요. 아버지의 안 좋은 유전자는 내 대에서 끊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신현철(가명) 씨는 불혹을 앞둔 나이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이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인은 아버지를 닮지 않았을까? 이 말을 전하는 신 씨의 손에는 이미 캔맥주가 들려있었다. 인터뷰 후 이어진 검사에서 알코올 중독 중간 단계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21일 방송에서 SBS <뉴스추적>은 알코올 중독이 중독자의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주목했다.

지난해 정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알코올 중독자의 수는 221만여명. 그렇다면 그것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부모의 알코올 중독으로 상처받고 그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몸만 자란 어른을 '성인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앞서 말한 신씨는 '성인아이'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방송은 문제는 '성인아이'는 단순하게 상처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신씨처럼 본인도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도 다른 중독에 빠질 확률도 높았다.

알코올 중독은 대부분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 신씨는 맞는 것보다 아버지의 말에 더 상처받았다고 고백했다.

"넌 글러 먹었다. 너는 안 된다. 이런 얘기를 이제 수도 없이 듣고 자라니까. 내가 이제, 속 죽는다 그러죠. 기가 완전히 죽어서, 20살 때 느낀 게 저는 제가 '병신'인줄 알았어요. 난 아무것도 못해. 어릴 때부터 20살 때까지 손가락질 해보세요. 애 '병신' 돼요. 그렇지 않겠어요?"

이렇게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그런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는 폭발하게 된다. 신씨에게는 그런 시기가 30대 초기에 찾아왔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방송은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의 사례를 다양하게 담았다. 차마 입밖으로 내기도 힘든 엄청난 사례들이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중독을 치료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쉬운 단계인듯하지만 제일 넘기 힘든 벽이다.

'성인아이'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고통을 타인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술한잔 하면서 친구에게 털어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다. 중독자 가족 모임 같은 곳을 찾아 집단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중독자가 '중독'을 인정하는 게 치료의 첫 단계인 것처럼, 아마도 그 가족도 '상처'을 인정하는 게 또 다른 되물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자신은 그런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자만해서 술마시지 말라. 족보에 당신이 알코올 중독의 첫번째 조상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다만 이날 방송이 가정폭력 장면을 일일이 '재연'한 부분은 아쉽다. 폭력영상만 머릿속에 남을 뿐 가정폭력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의 연출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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