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의 어느 오후. 날씨가 부쩍 추워진 탓인지 서울 여의도 공원이 한산하다. 평소와 다르게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손가락에 꼽힌다. 이때 텅 빈 광장을 유유히 가로질러 어디론가 이동하는 '자전거족' 아저씨가 눈에 띤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난 주말 TV에서 본 지구 온난화 문제가 스쳐가더니 자전거 마니아로 통하는 한 선배의 '자전거 예찬론'이 떠올랐다. "나의 동력으로 뭔가를 성취해낸 기분, 그 맛이 정말 끝내주지."

'나의 동력'이란 두 발을 말하는 것일텐데 자전거에 몸을 싣고 힘껏 바퀴를 구르며 스스로 이동할 때의 기분이 그렇게도 짜릿할까? 어떤 것에도 의존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자립한다는 의미에서는 매력적일 것 같은데 그래도 어디까지나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일 뿐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온전히 와닿을 수는 없는 법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릴 적 추억으로 간직된 노란색 세발 자전거, 친구들과 놀러가서 30분씩 빌려탔던 자전거 경주, 신문 구독 경품으로 전락한 자전거에 대한 추억만 갖고 있는 내게 취미와 생활체육을 넘어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급기야 스스로 "난 자전거에 미쳤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헷멜 등 안전장구를 단단히 준비하고,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엔 마스크와 목도리로 무장한채 출퇴근을 감행하는 '자전거족'도 이젠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겁이 많은 나같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보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을 만나도 첫 질문은 '무섭지 않느냐?'부터 시작된다. 도로 사정 때문이다. 자전거 도로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면 체력과 인내, 끈기와 같은 덕목만 잘 갖추면 될텐데 현실은 그보다 더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 자전거 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에 용감히 진입해 승용차와 버스, 오토바이와 뒤섞여 달리는 일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하지만 우리 사회, 지구가 처한 현실은 자전거를 향한 구애의 손짓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인간이 느끼는 위기 의식도 급속도로 번져가면서 "이제는 자전거다!"라는 절박한 구호가 넘실대고 있다.

방송에서 환경 문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자전거에 대한 생각은 막연함을 넘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자전거 문화의 확산을 위해 '자전거 선진국'의 사례를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이미 양복차림으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는 중년의 아저씨, 음악을 들으며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하는 젊은이들, 식료품 봉지를 자전거에 싣고 여유롭게 달리는 '외국'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새 '로망'으로 가슴에 꽂혀버렸다. 여기에 '재앙'으로까지 불리는 심각한 환경 문제는 우리 앞에 닥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충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서울시는 오는 2010년까지 668억원의 예산을 들여 360km에 이르는 자전거 전용도로망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서울 6개 지역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설치하고 안양천, 탄천, 중랑천 등 한강지천에도 전용 도로를 늘리겠다고 한다.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무공해' 자전거는 개인이 손쉽게 실천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적, 문화적 지원이 활발해져야 한다. 더 이상 구호와 로망이 아닌 생활과 현실이 되어야 한다.

2010년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지금보다 많이 확충된다고 하니 우선 체력 비축부터 해둬야겠다. 즐거운 자전거 생활에 도전할 날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혹시라도 자동차업계와 정유업계에서 자전거 도로가 늘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정책이 틀어지거나 왜곡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리고 사진 속의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는 헬멧을 꼭 써야 합니다. 안전도 챙기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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