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가 별안간에 나타났다. 6일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사드의 일부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7일 국방부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발사대 차량 2개와 발사대 2기 및 관련 장비들이다. 국방부는 중국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고 조기 대선 등 정치일정은 전혀 고려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론은 ‘일수불퇴’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대선에서 불행한(?)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사드 배치를 해치우자는 생각 아니겠냐는 것이다. 언론은 이런 속도라면 사드 반입 절차가 1~2개월 내에 끝나고 이르면 4월 정도에 실전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지난 6일 저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첫 부품이 한국에 도착했다고 7일 전했다. (주한미군사령부 제공/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어떤 군사적 요소를 고려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6일 5기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갈등 수위를 끌어 올렸다. 이 중 4기가 발사에 성공했고 3기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떨어졌다. 북한은 이를 주일미군 타격을 겨냥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동아시아를 둘러싼 정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ICBM 기술 완성이 마무리 단계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있다. 그러니 사드를 급하게 배치하는 모양새를 취해서 일종의 군사적 압박 수위를 소폭 올려보자는 계산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반도에 사드 부품 일부를 반입하는 것의 외교안보적 파괴력이 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에 치졸한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다. 특유의 민족주의를 동원해 한국 제품 불매 분위기에 노골적으로 불을 붙이는 기류도 감지된다. 사드의 일부 부품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효과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 군과 주한미군은 이번 결정이 순전히 국방정책적 판단에 의해 이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고 이미 부지공여 협상이 진행된 상황에서 한미 간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결정된 것인 만큼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등에 의하면 사드 부품 반입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난주 전화 통화를 통해 가능한 이른 시일에 사드를 배치하는데 합의한 결과이다. 외교부는 한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먼저 이를 요청했는지에 대해 한미동맹 차원에서 결정된 일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따져 봐야 할 것은 우리 정부의 누가 사드 부품 일부 반입을 ‘승인’하였느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롯데와 국방부의 사드 부지 공여 협상이나 사드 배치를 위한 부지 공사 등은 그간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됐던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일상적 행정이 이뤄진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발사 차량과 발사대가 들어오는 문제는 아무리 이 장비가 미군의 소유라는 점을 고려해도 ‘정치적 효과’라는 점에서 일상적 행정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있다는 점은 이 부분에서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주한미군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사안이 양국의 국방장관 차원에서만 결정된 일이라면 여러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또 외교안보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결정권을 대통령이 직무정지 된 상태에서 국방부 장관이 행사한 것이라면 권한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고, 대통령이 직무정지 된 상태를 이용해 미군이 사드 부품의 조기 반입을 주도한 것이라면 주권침해와 관련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만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비서실이 이 결정에 관여하였다면 문제의 성격은 더욱 복잡해진다. 청와대 비서실의 임무는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돼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좌하는 이들이 중요한 직무를 수행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통령의 직무는 여전히 정지된 상태인가 아닌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직무를 대리하는 황교안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를 승인했다고 본다면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지속됐던 논란을 또 끄집어내야 한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직무를 대리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냐에 대한 문제를 다시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야권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현상 유지’를 골자로 하는 최소한의 행정만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드 부품의 한반도 조기 반입이 과연 ‘현상 유지’에 대항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긴급현안보고를 한 뒤 여야 위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정권이 바뀔 것을 우려해 미리 손을 쓰는 영리한(?)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정치적 판단’을 하는 정권이 사실상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를 마치 중요하지 않은 문제처럼 처리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이 뭐든 중요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있어야 할 일이 별다른 고려 없이 처리되고 있는 것에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만 반복하고 있는 것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야권 일반을 중국의 내정간섭을 용인하는 세력 정도로 묘사하고 있으나, 이들의 주장도 대개는 중국의 눈치만 일방적으로 보자는 것은 아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최대한의 여러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외교부는 중국의 경제 보복 행위 등을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사드 부품 일부를 반입해 얻는 국가적 이익이 도대체 무엇인가. 보수언론은 연일 야권의 외교안보적 무능을 성토하고 있으나, 계속되는 사례를 통해 증명되는 것은 현 정권의 외교안보적 무능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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