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 쯤, 나는 <황교안 대선 출마, 어림없는 7가지 이유>란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이하 황교안)이 반기문 낙마 이후 높아진 지지율을 즐기면서 대선주자급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다음의 7가지 이유 때문에 출마를 공언하지는 못 할 거라 본 거지요.

-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세워야 할지도 모를 난감한 처지
- 경기를 공정 관리해야 할 심판이 경기장에 뛰어든다는 비난에 직면
- 대통령 탄핵에 책임 있는 인사가 대선 출마한다는 정치도의적 비난
- 반기문 낙마와 관련, 언론 검증 등 선출직 공무원에 따른 부담 실감
- 지지율 1위 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와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현실 인식
- 보수세력 분열로 정권교체 노리는 야권에 반사이익 가능성
- 대선 출마 결심 자체가 대통령 탄핵을 전제한다는 논리적 모순성

그러면서 결론삼아 글 말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황교안은 이번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표정관리 하는 작금의 생활을 즐기면서 말이죠.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독실한 개신교인으로서 '소명의식'을 내세우고 '십자가 희생' 운운하며 뒤늦게라도 대선에 출마하겠다면 뉘라서 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런데 불행하게도 황교안이 "상식 있는 사람"이기를 기대한 내 소망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역접으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내가 시사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소명의식에 바탕을 둔 대선 출마'가 현실화 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특검수사 연장 불허 이후 그가 보인 최근의 행보를 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전과 다른 황교안의 모습이 포착된 것은 3.1절 기념행사와 3.2 국가조찬기도회입니다. 먼저, 3.1절 기념사에서 황교안은 '에고' 화법을 사용하여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부각시켰습니다. 기념사 전문을 읽어봤으면 아시겠지만, 황교안은 당면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시종 "정부는... 하겠습니다"며 책임 주체로 '정부'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청년 문제를 언급하면서 갑자기 주어를 변화시킨 겁니다. 이렇게요.

"저는 우리 청년들의 저력과 도전정신을 믿으며, 이들이 마음껏 미래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습니다."

북한 도발이나 한일 과거사 문제, 국정안정 등에 대해 '정부'를 앞세우다가 유독 청년 문제에 한해서 "저는"이라고 주어를 바꾼 까닭이 무엇일까요? '안 봐도 비디오'라고, 5060 보수층에 머물러 있는 고정된 지지세력을 청년층으로까지 확대시켜 외연을 확장해 보자는 노림수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게 아니라면 3.1절 기념사에서 단 한 차례 사용된 '저는'이란 주어가 주는 충격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3.1절 기념사에서부터 엿보였던 황교안의 대선 출마 조짐을 한층 더 공고하게 만든 것이 바로 3.2 국가조찬기도회입니다. 이날 조찬기도회가 특별했던 것은 인사말을 맡은 황교안이 초안에도 없던 성경 말씀을 추가로 곁들여서 자신의 복잡미묘한 심경을 에둘러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인용한 잠언 16장 9절을 같이 읽어 보시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과 비슷한 의미를 내포한 이 구절은, 여호와의 도움이 있어야 사람의 계획한 바가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뜻 외에도 사람이 원래 가기로 계획한 길과는 다른 길로 여호와께서 인도하시기도 한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곤 합니다. 이 말을 황교안에게 대입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은 대선 출마에 부정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쪽으로 강권하신다는 고백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일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또 그 자리가 기독교인들이 모여 조찬을 같이 하며 기도하는 자리라서 애드립으로 성경 말씀을 추가한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선 출마 여부로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가 하필 그 문제와 연관된 성경 구절을 선별,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자못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밝히 말해서, 황교안이 잠언 16장 9절 말씀을 인용한 것은 대선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의 마음이 출마 쪽으로 기울었음을 보여주는 저울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갈 곳 모르는 그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지향하는 그의 삿된 욕망에 따라 자의적으로 성경 말씀을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는 거지요. 그에게 불리한 잠언 16장의 여러 말씀들을 건너 뛰고 유리한 구절만 소개한 것이 그 반증입니다.

v.05 -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후략)...
v.17 -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후략)...
v.18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v.25 -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v.27 -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황교안은 또 상기한 성경 구절 외에 "기독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라는 세 어절을 더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초안에 없었는데 뒤늦게 추가된 말들만 묶어 조합해 보면 '기독자로서의 책임감 +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됩니다. 이걸 보고도 그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치우쳤는지 눈치 채지 못한다면 까막눈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덧글]
어느 절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그를 보고 한 승려가 "바람이 움직이는구나"고 말하자, 다른 승려가 반박하여 이르기를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혜능이 두 승려가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지요. "이놈들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바로 너희들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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