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김제동이 <말하는대로>에 나타났다. 한국에 토크콘서트를 뿌리내린 장본인이자 촛불집회와 함께 매우 적극적으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티비보다 거리가 더 어울리는 연예인 김제동. 이제 시즌1 종영을 한 주 앞둔 시점에 <말하는대로> 출연한 것은 너무 늦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와야 할 사람이 마침내 온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톡투유> 때문일까? 김제동이 요즘 말하는 내용에는 늘 위로가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싫은 것은 아니지만 거꾸로 김제동에게 위로가 절실한 것은 아닌가 싶은 짠한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나 김제동의 거침없는 말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해도 왠지 내용이 이어지고, 그 이야기들을 듣는 동안 찡한 위로를 얻게 된다. 비록 사람마다 그 지점이 모두 다를 수는 있겠지만.

김제동은 녹화를 위해서 따로 원고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톡투유>에서도 그렇듯이 시민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김제동에게 그런 것이 딱히 필요치는 않을 것이긴 할 것이다. 그럼에도 참 신기한 것은 순간순간 변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결국은 결론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재주인지 운인지 모를 일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말하는대로>

이날 김제동이 한 말은 <톡투유>에서 해온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톡투유> 파일럿 때 소개했던 코디네이터 상미 씨의 이야기도 또 나왔다. 또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김제동이 그 사람에게서 받은 위로가 정말 컸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김제동이 소위 토크쇼 엠씨면서도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기술(?)을 발휘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김제동의 최종병기는 말발에 있다. 처음에는 남들이 쉽게 던지는 질문에 상처받는 자아로 시작된 이야기는 최종적으로 청중의 한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그 청중의 질문은 친구 사이에서 오해가 되기 쉬운 동정에 관한 예민한 감정에 대해서였다. 질문은 받은 김제동은 마치 준비된 것처럼 곧바로 단종비인 정순왕후 송씨의 일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바로 동정곡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린나이에 숙부의 손에 왕위도, 목숨도 모두 잃은 단종의 생애가 정말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 단종의 처절한 삶에 시선을 빼앗겨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어린 왕비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의 나이 고작 18세였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막막했을까.

JTBC 예능프로그램 <말하는대로>

“단종이 영월에 유배됐을 때, 단종이 거기서 승하하셨어요. 그때 당시에 왕후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저녁으로 영월쪽을 향해서 소리죽여서 울어요. 그 동네 아낙네들이 같이 와서 그 골목에서 어깨를 걸고 함께 울어줘요. 그게 동정곡의 출발이에요”

동정곡을 설명하고 이어지는 김제동의 해석이 진짜다. “함께 울어주는 것. 제가 생각하는 동정은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내 몸에 상처를 낼 필요는 없지만 함께 상처가 나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상처를 공유할 때 그때 진짜 위로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술술 풀려나온 말이었지만 철학만큼 깊이가 있고, 시처럼 아름다웠다. 김제동의 말을 진짜 시처럼 말한다면 이런 정도가 될 것 같다. “반편인 내가 반편인 너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히죽 웃으면서(곽재구 시 땅 끝에 와서)”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을 때나, 김제동의 말을 들었을 때나 똑같이 눈물이 핑 돌 정도의 위로를 얻었다.

김제동은 스스로 자신이 남을 웃긴다고 하는데, 그게 맞기는 하는데 그 웃음보다도 위로가 훌쩍 커버려서 직업을 개그맨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생뚱맞은 고민도 하게 된다. 어쨌든 <말하는대로> 제작진이 생각했던 궁극의 토크버스킹이 바로 김제동의 말하는 대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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