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도봉순의 괴력, 박보영의 저력 <힘쎈여자 도봉순> (2월 24일 방송)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전작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귀신을 보는 능력이었다면, 이번 JTBC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성인 남자들을 맨손으로 때려잡고 경운기도 거뜬히 드는 괴력이다. 그리고 배우 박보영에게는 이 특별한 능력들을 러블리하게 소화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억지스러움이 아닌 하나의 색깔로 승화시키는 걸 보면 말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봉순(박보영)은 집안 대대로 괴력을 지닌 가문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간호사에게 주먹을 날린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한 손으로 경운기를 번쩍 들고 덩치 큰 사내들을 맨 손으로 때려잡는 모습들이 첫 회를 장식했다.

도봉순 캐릭터와 드라마의 색깔을 동시에 보여주는 첫 회였다. 전작 <오! 나의 귀신님>에서 보여준 발랄하고 러블리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괴력을 발휘하는 대목에서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한 표정과 장정들을 한 손으로 쓰러뜨리는 괴력의 부조화, 유치원생들에게 보내는 윙크와 장정들에게 날리는 매서운 눈빛의 부조화. 그리고 숟가락을 종잇장처럼 구기면서 자신의 괴력을 증명하고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밥을 먹는 뻔뻔함까지. 박보영이 가진 여러 색깔의 얼굴이, 다소 붕 뜰 수 있는 드라마를 매력적으로 승화시켰다.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게다가 남녀 주인공의 관계도 흥미롭다. 재벌남의 등장은 흔하지만, 재벌남과 여비서가 아닌 재벌남과 여자 경호원의 관계는 신선하다. 물리적인 힘만 놓고 보면 민혁(박형식)보다 봉순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시종일관 코믹한 기운을 유지하던 <힘쎈여자 도봉순>은 마지막에 이르러 스릴러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코믹과 스릴러, 재벌과 경호원, 그리고 박보영. <힘쎈여자 도봉순>은 첫 회에서 이 많은 것을 보여준 ‘힘쎈 드라마’였다.

이 주의 Worst: 영재가 뭣이 중헌디? <슈퍼맨이 돌아왔다> (2월 19일 방송)

그동안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많이 진행해왔다. 안전교육을 위해 부모님 없는 집에 낯선 사람이 방문한다든지, 가상 지진 상황에서 대피하는 법을 배웠다. 가장 자주 등장했던 실험은 아마도 아이들의 놀이 활동을 통해 부모와의 애착 형성 혹은 발달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이었다. 부모 시청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해당 검사를 통해 아이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회를 거듭할수록 소재가 고갈되어가는 제작진에게, 이 같은 실험은 좋은 방송 소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방송된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승재 영재 테스트’는 도가 지나쳤다. 고지용-승재 부자 편이 방송되기 전, 이동국 오남매 편이 방송될 때부터 왼쪽 상단 자막에는 ‘상위 0.1% 승재의 비밀’이라는 예고편을 띄우며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물론 시작은 늘 그래왔듯이 지용과 승재 부자의 관계 점검이었다. 편집을 통해 만들어진 핵심은 ‘승재는 영재’였다.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관찰을 끝낸 전문가는 “제가 15년 간 1만 5천여 명의 아이들을 만나왔는데 승재가 언어에 있어서 조금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27개월이란 걸 의심할 만큼 매우 빠르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승재의 어휘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건 그동안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지켜봤던 부분이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도한 해석으로 부모를 현혹시켰다는 점이다. 전문가는 승재가 악어를 파충류로 분류하는 것을 보고 “거의 영재 수준”이라면서 “언어성 검사 한 번 할까요?”라고 부추겼다.

언어 능력이 뛰어난 것과 영재인 것은 분명 별개의 일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는 “표현 어휘력 검사 결과는 53개월 수준으로 상위 0.1%고, 이해력 역시 46개월 수준으로 상위 0.1%다”라고 결론 내렸다. 27개월짜리 자녀를 둔 부모가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개는 뿌듯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고지용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전문가가 “굉장히 무덤덤하시네요?”라며 오히려 놀라는 눈치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전문가가 그동안 이런 영재 테스트를 통해 흥분하는 부모들을 많이 봐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이번 영재 테스트는 어떤 의미에서 ‘불안 마케팅’의 정반대 지점에서 부모들의 조급증을 야기했다. 대개 교육 혹은 심리 전문가들은 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할 때가 있다. ‘이 정도 시기에 이런 교육은 필수다’, ‘다른 집 부모들은 이 정도는 기본으로 시킨다’, ‘이런 전집 정도는 읽어줘야 언어가 발달한다’ 등 부모들의 심리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번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부추김 마케팅’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도 승재 또래인데 왜 승재처럼 말을 못하지?’가 불안 마케팅이라면, ‘우리 아이도 승재처럼 말을 잘하는데 혹시 영재인가’가 부추김 마케팅에 해당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재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평범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고지용의 꿋꿋한 육아철학이었다. 고지용은 테스트 후 인터뷰에서 “승재가 또래 수준에 맞춰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연예인 아빠의 평범한 육아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단순히 언어 능력이 뛰어난 아이를 영재라고 부추기면서 부모 시청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돌아와 버린 것일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