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는 적군을 제압하고 적의 목숨을 빼앗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한 장소다. 유일하게 살인이 정당화할 수 있는 전쟁터에서 군인은 국가에서 공인한 살인 면허를 달고 적의 목숨을 빼앗아야만 한다. 그런데 ‘핵소 고지’의 주인공 데스몬드(앤드류 가필드 분)는 이런 전쟁의 명제, 타인의 목숨을 빼앗으라는 명제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되레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쟁터에 가는 것이라고 공언한다.

데스몬드는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군대에 입대하고 의무병으로 복무하기를 바란다. 적을 죽여야 한다고 교육하는 신병 훈련소라는 집단의 가치관과, 적을 죽이지 않겠다는 데스몬드라는 개인의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화 <핵소 고지>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데스몬드는 왜 총을 들기를 거부할까. 첫 번째는 ‘살인하지 말라’는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다. 십계명 가운데 하나인 ‘살인하지 말라’는 신념 때문에 데스몬드는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 것인데, ‘살인하지 말라’는 명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짚고 넘어가겠다.

임진왜란처럼 적군이 침략하는 상황에서는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적을 사살해야 한다. 국가 안보가 걸린 위급한 상황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적을 살상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가족과 나라 또한 지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자신과 가족, 나라의 안전이 걸린 문제에 있어 ‘살인하지 말라’는 명제를 고수한다면, 영토는 작지만 군사력에 있어서는 무시하지 못하는 ‘강소국’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핵소 고지> 스틸 이미지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데스몬드가 총을 들지 않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 두 번째 이유는 ‘가정 폭력’을 겪어서다. 단지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총을 잡지 않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 형제를 벽돌로 내리친 경험, 총을 든 아버지에게 총을 쏠 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데스몬드는 다시는 총을 잡지 않겠다는 신념이 확고하게 자리한다.

데스몬드는 총을 잡지 않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아 훈련소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다. 하지만 모두가 철수한 오키나와 전쟁터에서 데스몬드는 홀로 철수하지 않고 부상병을 한 명씩 구조한다. 훈련소에서 매듭을 묶는 훈련을 할 때 데스몬드가 엉뚱한 매듭을 만드는 시퀀스는, 오키나와에서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출하는 영화 후반부의 데스몬드의 영웅적인 활약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연출이다. 총을 들지 않는 무개념 동료라고 비난하던 데스몬드에게 전우들이 목숨을 빚지는 상황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쟁터에 간다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고귀한 신념 덕에 가능한 미덕이다.

영화 <핵소 고지> 스틸 이미지

메가폰을 잡은 멜 깁슨 감독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감독이다. ‘아포칼립토’에서는 포로의 심장을 적출하는 인신공희 장면을 연출함으로 ‘인류학적 잔혹사’를 재현한 바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가 채찍을 맞는 장면은 또 어떤가. 날카로운 동물의 뼈가 달린 채찍이 예수의 살을 갈가리 찢어놓는 잔혹 연출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핵소 고지’에서도 멜 깁슨의 리얼리티가 추구되는데, 그 잔혹함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오키나와 전투의 처절함을 스크린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일 듯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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