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적 자부심 중에 하나는 서양에 비해 앞선 금속활자의 발명이다. 하지만 고려의 금속활자 발명은 당시 세계사에서 그리 '인정받지 않는 모양새'다. 왜 그럴까? 활자의 발명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 문화적 변화가 어떻게 이끌어졌는가라는 영향력 면에 있어서 고려 금속활자의 파급력은 서양의 금속활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세 금속활자의 발명은 성서의 보급을 이끌었고,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랬기에, 활자가 발명되었을 때 기득권인 귀족들은 활자의 보급을 반대했었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발명한 한글 역시 기득권인 양반 계급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런 당시 기득권 계급과 백성을 사랑한 군주 세종대왕의 갈등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상세하게 그려진 바 있다.

감시 부재 사회 대한민국

‘시크릿 공화국’ 편

2월 19일 방영된 <SBS 스페셜>은 중세의 활자와 조선의 훈민정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백성들이 '무지'하기를 바랐던, 그래서 자신들이 마음껏 권력을 농단하기를 원했던 기득권,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한껏 혀를 찬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역적>을 보며 저런 시대에 살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20세기 이후의 세계를 정보화 시대라 지칭한다. 정보화 시대의 권력은 바로 그 ‘정보를 소유하거나 독점’하고 있는 세력을 뜻한다. 그러기에 정보화 시대 '우민화 정책'은 바로 권력의 정보 독점으로 이어진다. 바로 2017년 청문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그 권력의 독점적 폐해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2017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아니 해방 후 현대사에서 거개의 권력은 늘 '부패'의 딱지를 떼지 못했다. 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권력이 늘 부패하는 걸까? 과연 탄핵 이후 새로운 권력이 들어선다면 그 권력은 부패로부터 자유로울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바로 그 의문과 과제에 대해 <SBS 스페셜>이 선택한 답은 권력에 대한 국민의 권리로서의 '감시'이다.

위안부 합의 내용을 공표하지 않기로 합의?

‘시크릿 공화국’ 편

그 '감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다큐가 접근한 우회로는 세 가지다. 그 첫 번째는 2015년 12월 28일에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이다. 양국의 외무장관의 합의 조항에는 ‘일본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했다. 하지만 이후 아베 총리는 말을 바꿔 '털끝만큼도 인정할 마음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베만이 아니다. 국제회의에 나선 일본 외교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은 돈을 주었기에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자국의 대사를 소환하는 강력한 제스처까지 취한다. 얼굴을 바꾸는 일본, 그런 안하무인의 태도에 분노하며 양국의 합의 내용을 알려달라는 시민 단체에, 정부는 양국 정부의 합의 내용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식의 '비공개' 원칙을 고수한다.

지질 역학 조사는 했지만 발표는 할 수 없다?

외교적 관례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주변 마을, 마을에 사는 주민들 대다수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거나 투병 중이다. 과연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암에 걸려 검사를 받은 주민, 주민의 몸에선 제한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됐다. 거주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아들도, 심지어 손자의 몸에서까지 3대 모두에게서 방사능이 검출됐다. 하지만 정부는 방사능 수치가 높다고 암에 걸리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발뺌을 할 뿐이다. 심지어 월성 주변 마을 주민의 암 발생 수치를 알려 달라고 하니, 이번에도 역시 '비공개' 원칙을 주장한다.

암 환자 수치만 비공개가 아니다. 그 수명이 다한 월성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려 했던 정부. 하지만 주변 도시인 경주의 잦은 지진 발생과 함께, 월성 주변 지질대에 대한 의심이 커져만 갔다. 이에 역학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 또한 '비공개'다. 심지어 역학 조사에 참여한 학자들조차 보고서의 복사나 카피가 안 되는 제한적 열람만을 가능하게 했을 정도다.

국회 청문회만이 아닌 국가 전반, 사회 전반 곳곳, 국민의 주권이 행사되어야 할 영역 어디서든 국민이 맞닥뜨리는 것은 '위임한 권력'에 대한 정보 대신 '비공개'의 원칙이다. 그리고 결국 그 '비공개'의 향배가 궁극적으로 향한 곳은 '저 푸른 기와집'.

3년 전 일이라 기록이 없다? 혹은 국가 원수 안위의 문제다?

‘시크릿 공화국’ 편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와 관련하여,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안갯속'을 헤맨다. 당시 출동했지만 학생들을 구하지 않았던 해경 출동선의 CCTV부터 바로 그 시간 위임받은 국가 권력이었던 대통령의 7시간 행적까지, 도대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시의 일정이라 내놓은 보고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보고를 했다는데 통화 기록이 없다. 남겨진 것조차 기록된 내용이 아니라, 알음알음 누군지도 모르는 당사자의 기억을 쫓은 것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이제 대통령의 '정보 보호' 요청이 있다면 향후 30년간 '자물쇠'가 채워질 처지이다.

달라질 세상 향한 전제조건으로서 국민의 알권리

과연 이런 권력의 비타협적 비공개는 '민주적 정부'의 관행일까? 당연히 아니다. 다큐는 외국의 예를 들어 비교한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학교에서 민주사회의 기본 권리로서 ‘정보의 공개’를 배우고 실습한다. 학생이 요청한 정보 공개를 위해 교장은 지난 3년간의 이메일 기록 수백 페이지를 복사해 준다. 이유는? 물을 것도 없다. 그것은 권리이고, 의무이기 때문에. 덕분에 스웨덴에서는 공금으로 가족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총리 후보가 사퇴한다. 전기요금을 내지 않은 장관도 사퇴한다. 마늘 주사를 비롯하여 정체불명의 약품과 심지어 비아그라를 구매한 청와대의 물품 목록의 사용 내역은 여전히 국가 안위를 위한 '비공개'인 우리와 천양지차다. 우리나라에선 관련자조차도 혹시나 정보를 퍼다 나를까 열람 제한을 하는 원전 주변 지질 조사서는 캐나다로 가면 인터넷만 켜면 바로 검색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사무실에서는 그 자료가 굴러다니는 수준이라나.

이런 '정보'에 대한 스웨덴, 캐나다와 우리의 다른 관행은 이들 나라와 우리의 부패 지수의 차이로 판가름 난다. 스웨덴이 전년도에 비해 한 계단 내려와 4위인 반면, 우리나라는 1년 사이에 37위에서 52위로 전락했다. 국민의 알권리보다 국가 보안과 국가 안위, 통치자의 신변이 우선되는 나라인 이상, 어쩌면 정권이 바뀐다 해도 '부패'는 쉬이 개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기 위해 다큐가 전제로 삼은 것은 바로,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의 진정한 행사로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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