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이전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의 관심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쪽으로 쏠리고 있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의 결과가 ‘본선’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의 ‘양강구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인지 양쪽 지지자들의 신경전은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선택’이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이 대거 국민경선의 선거인단으로 등록해 최선이 아닌 후보를 뽑도록 하는 걸 뜻한다. 논란의 발단은 박사모 공식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도록 놔둘 수 없으니 민주당 경선에 대거 참여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해당 게시물에 반응한 박사모 회원들의 다수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게 옳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흥행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지만 SNS 등을 통해 이런 내용이 전해지면서 문재인 전 대표 지지자들의 경계심은 크게 확대됐다.

이런 우려가 제기된 탓인지 당 지도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업무방해죄로 고발할 수 있다”고 했고,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경쟁 정당에서 의도적 조직적으로 역선택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대단히 비열한 행위이며 처벌받아야 할 범죄행위”라고 발언했다.

반면 우상호 원내대표는 “역선택은 실체가 입증되지 않았다. 조직이 강한 사람이 국민경선을 막기 위한 논리로 이야기해온 게 역선택”이라며 이들의 우려에 의문을 표했다. 국민경선을 시행하는 이상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 선거인단으로 등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들의 표심이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다만 우상호 원내대표도 돈과 사람을 동원하는 본격적인 형태의 조직적 움직임이 있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언급을 하고 있기는 하다.

추미애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깝고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근 안희정 지사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는 데서 이런 유불리에 대한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역선택’의 우려가 커지면 커질수록 문재인 전 대표 지지층은 결집하게 된다. 반대로 안희정 지사 입장에선 ‘역선택’을 가능케 하는 비(非)민주당 지지층이 경선에 많이 참여할수록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여의도 주변의 호사가들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는 선거인단이 최대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직적인 형태의 ‘역선택’이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수정치 세력에 힘 있는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특히 이런 조건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역선택’이 조직적으로 작동하려면 ‘상대하기 쉬운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공유된 상태여야 하는데 당선 가능성이 있는 보수 후보가 없을뿐더러 중도적 확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안희정 지사가 본선에 진출할 경우 보수정치 입장에선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운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 녹음실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대한민국이 묻는다.'오디오 북 녹음 리허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역선택’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문재인 전 대표 지지층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전 대표의 열성적 지지층은 두 번의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첫째는 문재인 전 대표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에게 작은 표 차로 패배한 사건이다. 둘째는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이른바 ‘비문’ 세력이 문재인 전 대표를 끝없이 흔들다 결국은 당을 쪼갠 사건이다. 문재인 전 대표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정치 세력들이 ‘흔들기’를 지속하면 결국 2012년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보면 문재인 전 대표는 그야말로 포위돼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대세론이 강력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른바 전문가들은 “40%를 넘어야 대세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 경우도 있는데, 수치로 판단할 게 아니라 형세를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 2위인 안희정 지사는 모든 대권주자 중에 문재인 전 대표에 가장 우호적인 인사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결국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경선불복 등의 상황은 상정하기 어렵다. 최근의 다수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정당 지지율은 40%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대선후보’가 된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 유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지지층이 ‘불안감’을 느끼는 건 따로 심층적으로 다뤄봐야 할 주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한 부분에 한국정치가 직면해있는 일종의 ‘부조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대중의 일상적 활동과 정치가 유리되는 현상이 심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여전히 정치권의 일부는 ‘친박과 친문 등 패권주의 세력을 제외한 제3지대 정계개편’ 등을 언급하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사실상 내쫓는 폭군과 같은 일을 저지르는데 오히려 이에 앞장선 친박 정치인들을 ‘패권주의 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친문패권주의’ 쪽이다. 대다수의 야권 지지자들은 ‘친문패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공천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배제된 이들의 자기 서사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정치인들끼리나 통하는 얘기라는 거다.

정치인들끼리나 통하는 얘기가 유력 대권주자를 흔들고 정계에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최대의 요인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언더독(underdog)’ 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역선택’에 대한 경계심의 표출은 이 결과다. 이렇게 보면 ‘역선택’을 둘러싼 이들의 반응은 기성 정치인들이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명분을 동원한다는 식의 냉소적 현실 규정을 정치가 스스로 생산한 것에 대한 일종의 ‘응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유독 문재인 전 대표 지지자들만 이런 관념을 갖는 게 아니라는 거다. 소재가 다를 뿐 정치를 바라보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입장에서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만일 2017년 대선을 통해 수립된 정권 하에서도 한국 정치가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파국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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