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소금길이라는 곳이 있다. 그 근처 살아도 잘 모르고, 그나마 안다면 사진찍기를 즐기는 출사족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이 소금길의 힌트가 나왔다. 염리동 소금길은 전국 곳곳에 존재하는 많은 그림마을 중 하나이다. 거기다가 과거 마포 소금장수들의 작은 역사까지 갖고 있으니 도심 속 작은 명소가 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곳들과 달리 소금길이 그림마을이 된 이유는 조금 남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재개발이 지정되었다가 해제가 되는 혼란스러운 과정에 휩쓸리면서 오히려 우범지대화 된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시가 2012년 범죄예방 디자인 사업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지금 소금길의 예쁜 모습과 명성을 갖게 된 것이니 아이러니가 담긴 탄생이라 할 것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

문제는 이곳이 다시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기껏 일궈놓은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이 모두 사라지게 된 진짜 아이러니를 맞게 된 데 있다. 이미 충분히 높은 지점에 위치한 염리동에 또 다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몇 년 간 사람들에게 다녀간 추억을 선사하던 소금길은 사라지게 된다.

어차피 도시라는 것이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많은 이들의 내집마련 희망이 걸려 있는 재개발이라는 시스템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거기서 한 발짝만 물러서보면 재개발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동네와 거미줄 같은 골목들을 한순간에 뭉개버리는 과격한 행위에 불과하다. 재개발은 결코 골목을 만들 수 없다.

그렇게 거의 모든 주민들이 떠난 소금길에 예능 <한끼줍쇼>가 등장했다. 뭔가 대단히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녀와 가로등도 아니고 철거와 예능이라니. 그래서 다른 때보다 더욱 화면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는 없었다. 일단 예능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끼줍쇼>가 소금길을 찾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주한 텅 빈 동네에서 한 끼를 나눌 주민을 찾는다는 것은 당연히 어렵고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단순히 더 어렵게 하려는 이유만으로 굳이 철거를 앞둔 아름다운 마을 소금길을 찾았는지에 대한 의심은 남는다. 그러나 그 의심은 이미 충족된 예능의 조건으로 인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번 주 게스트는 이시영과 유병재. 제작진의 의도대로 이들은 다른 곳들과 달리 사람이 있는 집을 미리 알아두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억센 추위에 철거를 앞둬 을씨년스러운 동네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었다. 가뜩이나 스스로 다큐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한끼줍쇼>라지만 이쯤 되면 예능은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

진짜로 예능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예능의 끝은 다큐일 거라는 과거 이경규의 말처럼 <한끼줍쇼>는 예능이라는 지극히 가벼운 도화지 위에 철거라는 무겁고 쓸쓸한 그림을 올려놓았다. 아무리 이경규, 강호동이 웃기려고 애를 써도 될 일이 아니었다. 다큐에 주도권을 빼앗긴 <한끼줍쇼>는 이미 뭘 해도 다큐였다.

늘 그렇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번 한 번이라면, 이런 배경과 풍경이라면 예능 없이 다큐로 가도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예능의 재미는 더 이상 웃음에 독점되지 않으니 말이다. <한끼줍쇼>가 워낙 독특한 콘셉트를 시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철거와 예능을 만나게 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또한 거기서 예능에 대한 생각의 틀은 조금이라도 더 무너졌을 것이다. 뉴스고 예능이고 요즘 JTBC가 하는 일은 모두가 심상치 않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