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SF영화인 줄 알았다. 물론 <컨택트>에는 SF 장르적 요소가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과연 이 영화를 SF영화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컨택트>는 SF영화보다 스릴러 드라마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를 서스펜스가 구축된 잘 만든 스릴러물로 보자니, 이 영화가 준 감흥을 완벽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이다. 왜 한국에서는 구태여 <컨택트>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SF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콘택트>(1997)와 비슷한 영화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인간과 외계인간의 접촉이 영화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다뤄지긴 하지만, 이 영화는 오직 <컨택트>만 담아내는 게 아니다. 한국 측 수입, 배급사(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의 전략에 의해 바뀐 제목이 두고두고 아쉽다.

영화 <컨택트> 스틸 이미지

이 영화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괴이한 생명체를 맞닥뜨릴 때의 두려움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SF스릴러로 간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을 통해 서스펜스가 잘 구축된 범죄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줬던 드니 빌뇌브 감독은 낯선 환경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주는 솜씨가 대단하다. 하지만 뛰어난 연출 기법을 보여줬다는 이유만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SF의 탄생'이라는 식으로 호들갑을 떤다면, 그것은 과대광고에 불과하다. 사실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 속 인물들과 함께 긴장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몰입감 있는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감독도 흔치는 않지만 말이다.

2) 외계인(혹은 새로운 문물)을 접했을 때 인류가 취해야 할 이상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을 비롯한 <컨택트>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외계인을 두려워하고 있다. 말도 안 통하고,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도 모르겠고, 행여 지구를 침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참다못한 몇몇 나라들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외계인들과 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수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 낼 뿐이다. 아니 자칫 잘못하다가 지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멸망을 앞당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컨택트> 스틸 이미지

2)의 연장선상으로 3)외계인(혹은 새로운 문물)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외계인들이 지구(자신)를 공격할까봐 두려워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루이스는 외계인들과 소통을 하고자 노력한다. 처음부터 루이스가 외계인들에게 친밀함을 느낀 것은 아니다. 처음 외계인들이 있는 비행물체에 접근했을 때, 루이스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고, 외계인과 처음으로 조우했을 당시 그녀는 충격에 정신까지 잃게 된다(그래도 그 전에 연구자보다는 낫다는 웨버 대령의 칭찬을 듣기는 했지만).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고 외계인과 진정한 소통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전쟁 위기에서 지구를 지키는 용감한 영웅이 된다.

그런데 지구를 지킨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컨택트>의 결말은 상당히 찜찜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지구도 지키고, 루이스를 옆에서 살뜰하게 챙겨주었던 이안(제레미 레너 분)과 사랑도 확인하는 행복한 결말인데, 왜 이리도 슬프게 다가오는 건지. 결말에 대한 복선은 이미 오프닝에 살뜰하게 깔려 있었다.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자란 딸이 애교를 부리는 마냥 행복해야할 상황에서도, 애써 슬픔을 감추는 듯한 루이스의 아리송한 표정. 그 이후에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루이스와 딸의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실체에 전율까지 느껴진다. <컨택트>가 문과판 <인터스텔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컨택트> 스틸 이미지

영화를 다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훗날 있어날 안 좋을 일을 알고 있다면, 나는 순순히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설령 결말이 좋지 않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까지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우리 삶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를 얻고자 하면, 그 대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육체, 사상, 물질 등)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진 것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존재를 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컨택트>는 자신과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진 이들을 두려워하고 배격하는 인간의 편협적인 태도를 실감나게 비튼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외계인이 루이스(인간)에게 건넨 '무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자세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다수 인간들은 '무기'를 말 그대로 '무기', 즉 외계인이 인간을 공격하는 도구로 간주한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외계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루이스는 '무기'를 '선물'로 해석하고, 외계인과 지구인간의 전쟁을 막는다.

문제는 외계인이 준 무언가를 '선물'로 받아들인 그 이후부터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인식과 사고체계를 송두리째 바꾼다는 것. 감히 이 영화를 몇 마디의 언어로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보고 나면 명쾌한 답을 얻는 것이 아닌, 생각을 여러 가지로 뻗어나가게 만드는 영화. 여러모로 난해하게 다가오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컨택트'가 아니라 '어라이벌'이라는 원제가 더 와 닿는, 영화 자체가 끝이 곧 시작인 <Arriv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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