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우결> 아닌 <인간극장> 같은 <신혼일기> (2월 10일 방송)

tvN <신혼일기>

tvN <신혼일기> 첫 회는 질투 반 부러움 반으로 시청했다. 김치 수제비를 만드는 남편과 그 옆에서 종이접기를 하는 아내. 현실에 없는 모습이었기에, 유부녀로서 객관적으로 시청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10일 방송된 2회 역시 여전히 달달했지만, 그 안에서 부부의 현실이 묻어났다.

구혜선은 피아노를 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지만, 안재현이 의도치 않게 방해를 하면서 구혜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여느 부부들 같았다면 그 자리에서 싸웠겠지만, 이 부부는 즉흥적인 감정을 혼자 가라앉히는 시간을 각자 화장실에서 가졌다. 혜선이 혼자 화장실에서 감정을 다스리면서 기분이 풀리자, 이번엔 혜선의 기분을 풀어주려던 재현의 감정이 가라앉았다. 무엇 때문에 싸웠느냐보다는, 서로의 감정이 상하고 풀어지고를 반복하는 그 미묘한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어쩌면 부부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 감정 다스리기와 대화법. <신혼일기>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나 JTBC <최고의 사랑>처럼 미션 위주의 신혼일기가 아닌,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담아냈다.

tvN <신혼일기>

각자의 감정이 충분히 가라앉자, 두 사람은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가사분담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결혼생활 전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화의 흐름이었다. 누가 얼마나 집안일을 더 많이 했느냐는 둥 티격태격하는 감정 소모에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엔 가사 일에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 있었지만 분명한 건 자기(안재현)는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도 일관성 있게 해 달라”는 구혜선의 차분한 말은 훈수도, 조언도 아닌 그저 진심이었다.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현명한 부부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충분히 언성을 높일 만한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구혜선은 차분하게 대화로 풀어갔고, 안재현은 그에 수긍했다.

게다가 <신혼일기>의 전체적인 그림은 나영석 피디의 전작인 <삼시세끼> 연장판을 보는 듯했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강아지, 고양이들과 부대끼면서 여유롭게, 그저 맛있는 밥 차려서 먹고 피아노 치는 게 전부인 일상. 로맨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혹은 반대로 리얼리티를 최대한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싸우면 싸우는 대로. 심지어 <삼시세끼>처럼 낚시를 해야 되는 것도, 텃밭을 가꿔서 직접 재료를 자급자족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을 구속하는 건 전혀 없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공기는 너무나 느긋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현실성과 비현실성이 맞물려 <신혼일기>를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을 만들어냈다.

tvN <신혼일기>

파스타 대신 구수한 시래기 밥을 만드는 부부. 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아메리카노 대신 보리차를 마시는 부부. 아이돌 그룹의 최신가요 대신 김국환의 <타타타>를 듣는 부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 서로 주고받는 눈빛은 분명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방식은 노부부와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신혼일기>는 <우결>보다는 <인간극장>에 가깝다.

이 주의 Worst: 스케일만 커진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2> (2월 10일 방송)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2>

“스케일이 너무 커졌어.” 김숙의 말이 맞다. 박진영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졌던, 일종의 가내수공업 같았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에 비해 시즌2는 노래, 춤, 연기, 심지어 인성교육까지 책임질 전문가가 총출동했다. 그래서일까. 본연의 의미가 다소 퇴색된 첫 회였다.

지난 시즌에서 ‘언니쓰’는 과거 걸그룹을 꿈꿨던 민효린 개인의 꿈에서 시작됐다. 박진영이 투입되어 노래, 안무, 콘셉트, 뮤직비디오가 모두 진행됐지만, 어쨌든 주도권은 <언니들의 슬램덩크> 멤버들이 쥐고 있었다. ‘언니쓰’가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어설프지만 우직하게 꿈을 향해 가는 멤버들의 모습 덕분이었지 프로듀서의 전문성 덕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10일 방송된 첫 회만 놓고 본다면, 시즌2 걸그룹은 아예 처음부터 김형석 프로듀서가 멤버들을 면담하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프로듀서 주도형 프로젝트 형태였다. 적어도 첫 회는 김형석이 이끌어가고 멤버들이 따라가는 형태였다. 제작진도 ‘김 선생님’, ‘면담’ 등의 표현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동료가 아닌 사제관계로 정해버렸다.

시즌 1에서 박진영 프로듀서와 멤버들은 술을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어떤 걸그룹을 하고 싶은지, 각자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진영은 걸그룹 콘셉트를 정하고 곡을 만들었다. 반면, 이번 시즌에서 대화가 이뤄진 곳은 술자리가 아닌 면담 자리였다. 김형석이 질문을 하면 멤버들이 대답을 하고, 김형석이 노래를 부탁하면 멤버들이 부르는 식이었다. 마치 아이돌 연습생과 소속사 대표 혹은 학생과 학생주임 같은 관계.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2>

성악 유망주였으나 결국 노래를 그만둔 강예원, 가수 외에 창작 안무가도 꿈꾸고 있는 공민지 등 멤버 각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형석이 어떤 솔루션이나 조언을 건네는 순간, <슈퍼스타K>나 <K팝스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딱히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 없더라도, 멤버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서 음악,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팀워크 형성의 시작이다. 왜 멤버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김형석 프로듀서한테만 얘기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다른 방에서 이를 지켜보는 그림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중심을 잡고 걸그룹을 이끌고 가는 사람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이라는 것이, 심사위원이나 선생님처럼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디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언니들의 꿈이 김형석의 꿈으로 변질되질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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