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등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우상호 원내대표 주도로 방송통신위원회 후임 위원 인선을 논의하고 있어 '도끼로 제 발등 찍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방통위원장과 상임위원 1명, 여당이 상임위원 1명, 야당이 2명을 각각 추천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합의제 기구로, 5명의 위원이 모두 임기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오는 4월 7일 임기가 끝나고, 김재홍 부위원장과 이기주, 김석진 상임위원은 3월 26일 임기가 만료된다. 고삼석 상임위원의 임기는 6월 8일까지다. 정상적인 정치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여야가 머리를 맞대 방통위원 구성을 논의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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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다. 황교안 총리가 박 대통령을 대신해 대통령 권한대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장·차관급 인사까지는 수행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일부 증인에 대해 직권취소를 하는 등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복수의 언론은 박 대통령 탄핵 인용이 빠르면 3월 초 늦어도 3월 중순에는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어, 5월 중 조기 대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현재 새누리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방통위 위원 구성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황 권한대행의 경우 권한 행사의 정당성이 부족하고, 새누리당은 정치적 책임 소재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치 상황 속에서 민주당이 섣불리 방통위원 구성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먼저 위원 구성 움직임을 보이면, 정부여당에 위원 지명의 빌미를 주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도 정부여당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응하는 것이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여당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경우 민주당이 굳이 위원 추천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3~4월에 걸쳐 4명의 방통위 상임위원 임기가 종료되면, 5월로 예상되는 조기대선 국면에서 방통위는 야당이 추천한 고삼석 상임위원 1인 체제로 운영된다. 이럴 경우 민주당이 오히려 정치적 반사이익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는 셈이다.

대통령 권한을 위임받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 권한대행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한다면 최성준 위원장의 임기만료인 4월 7일을 전후해 새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를 국회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조기대선 국면에서 제대로 된 청문회 없이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방통위원장 임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빌미를 주면 줄수록 황교안 권한대행이 임명한 위원장과 1명의 상임위원, 새누리당이 임명한 1명의 상임위원이 방통위에 자리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방통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임명된 정부여당 측 3인의 방통위원은 법률상 보장된 임기를 모두 채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아직 2년의 임기가 남은 KBS 고대영 사장, 2월 임명될 것으로 보이는 MBC 사장, KBS·E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등까지 고려해 보면 한국의 공영방송 등 미디어 분야는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박근혜 체제'가 2~3년은 유지될 것이다. 민주당의 방통위원 구성 논의가 정치적 패착과 미디어의 암흑기를 연장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방통위원 구성 논의를 두고 반대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상조라는 얘기다. 그러나 해당 논의를 지시한 우상호 원내대표는 내부 반발에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우 원내대표가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9일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성명을 내고 "민주당은 방통위원 선임 논의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방통위원 추천을 강행하면 방통위원장 후임 인선 추진 가능성도 높아진다"면서 "대통령이 직무정지인 상황에서 대통령 몫의 2명을 어떻게 임명할지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야당 추천 몫 1명을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며,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도 큰 변수"라고 밝혔다. 또 "탄핵 이후 정부조직개편 논의도 고려 대상이 돼야 한다"면서 "민주당이 방통위 임기만료를 이유로 후임 인선에 나서는 것은 섣부른 행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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