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의 장인은 장준혁에게 이런 식으로 말했다.

‘센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센 놈이야’

<선덕여왕> 비재 에피소드에서 화랑들은 이렇게 말한 셈이다.

‘아니! 우리들의 세계에선 센 놈이 살아남는다!’

살아남는 놈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은 술수, 음모,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광명정대한 경쟁이라면 당연히 센 놈이 이긴다. 하지만 협잡과 반칙을 통하면 비겁한 자가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어때? 살아남기만 하면 장땡인 걸.‘

이것이 <하얀거탑>의 세계였다. 비겁한 세상.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추잡한 세상. 반면에 <선덕여왕> 비재에서 미실의 편인 칠숙은 덕만의 편이 승리하는 것보다, 광명정대한 승부에 조작이 끼어드는 것을 더 증오했다. 그는 자신이 유신의 칼을 맞았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때, 스스로 그 사실을 밝혀 자신들의 패배를 자초했다. 왜? 그는 화랑이니까.

‘패배를 패배라 하지 않고 어찌 화랑이라 하겠소.’

▲ MBC 드라마 '선덕여왕'ⓒMBC

멋진 보종 멋진 화랑들

요즘 비담이 선과 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서 매력적이라는 분석 기사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비담이 선이라는 근거가 있나? 비담은 이렇다 할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주인공인 덕만을 도왔을 뿐이다.

주인공과 친하면 선이다? 다시 말해, 나랑 친하면 선이다? 우리 편이면 선이다? 이렇게 따지면 전두환에게 장세동은 선이었으며, 히틀러에게 괴링도 선이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선을 말할 순 없다.

선은 주인공과 친하건 친하지 않건, 대의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보종이 이번 비재에서 선의 면모를 보였다. 유신의 투지를 보더니 유신을 응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화랑이니까. 화랑이라면 누구나 그 광경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가장 용맹한 자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그것이 설사 적이라 할지라도. 보종은 감투정신이라는 화랑의 대의를 자신의 사익에 우선시했다. 그러므로 ‘선’이다. 그런데 보종은 귀족정치를 펴려는 미실의 편, 즉 주인공의 반대편이다. 그래서 선이지만 박멸되어야 할 사람이다.

여기에서 비극성이 발생한다. 자신이 믿는 대의대로 행동하지만 결국 스러져가는 무사의 장렬한 모습. 계속해서 반복 형상화되는 일본 명치유신 당시 무사들의 비극성의 핵심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누구도 비루하지 않고, 모두가 당당하지만 결국 한쪽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 이런 이야기는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선덕여왕>에서 화랑들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초반부 전투장면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 화랑들은 ‘찌질’해보였었다. 그런 화랑들이 왜 전투장면 때 멋져보였을까? 외적이 침입하자 화랑들이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모두 최일선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비굴하게 굴지 않았다. 그러자 화랑의 인기가 폭발했다.

이번 비재 에피소드에서 <선덕여왕>은 화랑을 더욱 멋지게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편가름을 넘어, 대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들의 정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화랑들을 사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대의의 판을 딛고 있는 청년들로 그려가고 있다. 이런 청년들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대결은 서사적인 비극성을 느끼게 할 수밖에 없다.

▲ MBC 드라마 '선덕여왕'ⓒMBC

썩은 현실과 눈부신 그들

모두가 정정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사회적 신뢰다. 만약 남이 반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반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사회는 신뢰가 땅에 떨어진 사회다. 바로 한국이 그렇다. 한국은 사회적 신뢰 지수가 OECD 최하위권인 나라다. 나라꼴이 ‘개판’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반칙하는 장준혁 일당을 응원했다.

장준혁은 시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대로 의사 집안인 귀족 일당들의 기득권을 탈취하려고 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음모, 협잡을 마다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런 장준혁을 응원하며, 장준혁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최도영을 공격했다. 왜? 어차피 귀족 일당들이 장준혁보다 더한 협잡을 일삼는다고 생각하니까.

화랑들의 비재에서 누가 일등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건 저 화랑이 권세가의 아들이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한다면? 화랑은 콩가루 집단이 될 것이다. <선덕여왕>은 모두가 승복하는 정당한 승부를 통해 늠름한 화랑집단을 그렸다.

한국의 승자집단에 대해 승복하는 사람이 있을까? 고위직 청문회에선 언제나 지도층의 추잡한 모습이 드러난다. 지도층의 병역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부잣집 자식들이 돈과 각종 연줄, ‘빽’을 통해 저절로 잘 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것이 한국의 사회적 신뢰도를 추락시킨다.

우리가 바로 그런 <하얀거탑>의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선덕여왕>에서 그려진 정정당당한 화랑들의 세계가 더 눈부시다. 일국의 최고 실세 아들이면서도 한 개인으로 경쟁에 임하는 보종. 모두가 대의를 지키고, 적이라 할지라도 대의에 입각해 진심으로 응원할 줄 아는 청년들의 세상. 정당한 규칙이 무너지면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분노하는 거인들의 세상. <선덕여왕>이 그려주는 판타지는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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