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 재직 당시 문자로 해임 통고받고 속된 말로 '나가리'될 뻔 했다가 박근혜 탄핵으로 기사회생해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오르고, 혼미한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장수를 잃은 보수진영의 대표주자로 새롭게 부각되기까지, 최근 몇 달 사이에 드라마틱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대선 출마를 공언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다른 보수주자들보다 더 높은 지지율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요. 현재 그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대세' 문재인에 이어 전체 2위를 달리고 있는 안희정을 턱 밑까지 따라 붙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언론도 당연 흥분할 밖에요.

그에게 쏟아진 언론의 관심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선에 출마하기로 한 것이냐? 언제 출마 선언할 거냐?" 등등.

그러나 황교안 권한대행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 그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거부하고 있어서 기자들의 애간장만 타게 만들고 있지요. 수시로 국회를 벗어나 사람들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대민 접촉빈도를 늘려가고 있는 황교안 행동거지를 보면, 누가 봐도 분명 대선주차급 유세처럼 보이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 말도 않고 있으니 기자들로선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며 지지율 상승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미소만 짓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황교안이 이렇듯 똑 부러지게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대선 출마를 결심할 경우,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세워야 할 난감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나라의 안위보다 개인의 권력욕을 더 챙긴다는 비난을 받게 되겠지요.

둘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관리, 주재해야 할 심판의 자리에 있는 그가 대선 출마에 뛰어들 경우, 심판이 경기장에 뛰어든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겠지요.

셋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을 뒷받침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그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정치도의적인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겠지요.

넷째, 국무총리 청문회 과정에서 야당과 언론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그로선, 임명직 공무원 생활이 주였던 반기문이 대선 출마 20여일 만에 낙마하는 것을 보면서 선출직 공무원에 따른 부담감을 실감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그가 상기한 여러 위험요소들을 무릅쓰면서까지 대선판에 뛰어들기에는 대세를 굳히며 지지율 1위를 독주하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냉혹한 현실인식이 그의 도전의사를 위축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5일 오후 서울시 양천구 신영시장을 방문, 물건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여섯째, 그가 만약 새누리당의 '예쁜 늦둥이'가 되어 출마한다면 바른정당의 대선주자와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보수세력의 분열로 인해 오히려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야권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극히 모셨고 정치적 공동운명체를 자임하고 있는 그가 대선 출마를 결심할 경우, 그런 행동 자체가 박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궁색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외치면서도 대선 출마를 속속 공언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여타 정치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딜레마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황교안은 이번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표정관리를 하는 작금의 상황을 즐기면서 말이죠.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독실한 개신교인으로서 '소명의식'을 내세우고 '십자가 희생' 운운하며 뒤늦게라도 대선에 출마하겠다면 뉘라서 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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