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일 전경련에 정식으로 탈퇴원을 제출했다고 한다. 전경련에 회원으로 가입해있는 계열사들도 잇따라 탈퇴원을 제출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전경련 탈퇴’를 기정사실화한 지 2달 만이다.

LG, SK, 현대자동차 등도 전경련 탈퇴를 결정했거나 형식과 절차 등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에 있는 상태다. 이런 흐름이라면 결국 전경련은 사실상 해체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체는 기정사실화됐고 정책연구기관 등으로 형태를 변경하는 방법에 대해 숙고 중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언론은 그간 전경련의 해체를 정경유착 근절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많이 내왔다. 미르 K스포츠재단 등에 기업이 출연하는 과정에서 전경련이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이 단체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도록 하는 전경련이 해체된다면 앞으로 기업은 정치의 압력 없이 오로지 시장원리에 의한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한국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섞인 주장도 신문 지상에 수없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정치권과 언론이 전경련 해체를 주문한 것은 대기업 입장에서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던 걸로 볼 수도 있다. 대기업이 볼 때도 전경련의 시대적 효용(?)은 이미 다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전경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직접 독대해 민원사항을 전달했으며, 전경련은 이 과정에서 재단 설립의 실무 등 보조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전경련은 정권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진행한 비밀스러운 정치 사업 등에 대기업이 자금을 투입토록 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요컨대 전경련이 없으면 대기업들은 이런 식의 자금 지출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찾게 된다는 얘기다. 기업의 돈을 직접 ‘아스팔트 우파’들에 건네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상황 인식에 불과하며, 대기업은 전경련이 없어도 정치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민원의 해결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전달하는 방법과 체계를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연합뉴스)

전경련은 태생부터 ‘정경유착’을 위해 만들어 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 4·19 혁명의 요구 일부를 접수해 ‘부정축재자 일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해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떠맡기로 하고 법적 처벌 등은 면해달라고 한 장본인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다. 이때 모종의 정치적 기여를 결의하고 사면된 기업인들이 만든 단체가 전경련의 모태이다.

실제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실제로 통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정권과 기업인들의 관계는 서로 ‘공생’을 하는 사이가 됐다. 포항제철이나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 등 정권의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대기업이 나섰고, 정권은 ‘경제 발전’, ‘근대화’ 등의 명분을 내세워 사실상 기업에 특혜를 주는 정책 운용으로 일관했다. 이런 정부 주도 및 기업 특혜에 기반 한 경제 발전 모델은 박정희 정권의 말기가 돼서야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대통령이 사망하고 신군부가 집권하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대기업에 대해 정권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시기가 계속되었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대기업이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87년 이후다. 모든 것이 민주화되는 세상이니 자연스럽게 이들도 ‘경제민주화’를 외쳤다. 물론 이는 정치인들이나 학계, 당시 막 성장하기 시작한 노동계가 언급하는 ‘경제민주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기업에게 정권이 과도한 금전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경제 발전을 위해 특혜는 특혜대로 계속 줘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전경련은 이때 대기업들의 이념적 조직적 중심으로 정권과 정치권을 향한 전면적인 압박에 나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정권이 추진하는 과잉중복투자 해소와 같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이라 불리는 정책 집행에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즉, 이때만 해도 대기업들의 주요 논리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 무제한적 경쟁체제의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경제 발전과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해 대기업에 대한 정권의 일방적 지원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세계화와 ‘작은 정부’의 논리를 정권이 내걸면서 대기업들의 대응도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시대에 누렸던 영광의 근원인 과거와 같은 경제발전 모델은 앞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때 전경련은 여전히 정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기업들의 요구를 신자유주의적 언어로 바꿔 제시하는 이데올로그적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면 과거 기업들이 “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면 이제는 “개방을 대비해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후 정권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국가가 오히려 나서서 시장원리를 강조하게 되자 대기업들의 대변자로서 전경련의 위상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전경련이 갖고 있던 시장예측 및 연구기능 등은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각자의 연구소로 사실상 옮겨갔다. 전경련이 정권의 요구를 대기업에 전달하고 이를 실행하는 정도의 조직으로 전락한 것에는 이런 상황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전경련이 사실상 해체되는 것은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경유착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경련 해체 보다 오히려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에서 대기업들이 정권에 전달한 민원 내용은 주로 경영권 승계나 그룹 총수의 사면과 같은 문제와 연관이 있다. 바꿔 말하면 대기업이 총수 1인에 지배되는 구조가 미르 K스포츠 재단 문제가 커지는 토양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 오너가 경영까지 독점하는 풍토를 바꾸고 전문경영인을 세워 주주자본주의적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게 이런 주장을 내놓는 사람들의 해법이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이런 방식의 정경유착 근절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 총량을 증가시켜줄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대기업이 경제 권력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휘두르는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유착의 근절뿐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대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이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보면 쳇바퀴 같은 논리로 보이기도 한다. 정권과 기업이 이익을 앞에 두고 초법적 결탁을 하는 현상이 해결 방법으로 정치가 기업의 행위에 개입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보수언론은 대기업을 견제하려는 진보적인 정치 세력들의 여러 시도를 두고 경제는 오로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아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을 윽박질러 재단 출연금을 모은 것과 정치가 법과 제도를 통해 대기업의 전횡을 제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이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정치와 기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권력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와 경제의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전경련 해산’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실제 권력의 내용을 보는 언론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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