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동조합 간부들이 14일부터 ‘정치 독립적 사장선임 법제화’ 국회 앞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 홈페이지에 게제된 기사에 따르면 강동구 노조위원장은 “정치권의 나눠 먹기식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제청하는 한 반복되는 정권의 낙하산 논란을 불식시킬 수 없다”며 “여야 어느 쪽의 추천 몫도 과반을 넘지 않는 위원회가 특별다수제인 2/3 이상 또는 3/5 이상의 찬성으로 사장을 선출해야 정치 독립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재훈 부위원장은 “오는 11월 23일 이병순 사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5천 조합원과 함께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장선임 구조를 법제화하는 데 총력을 쏟겠다"고 밝혔다. 최재훈 부위원장은 18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이용경 의원 주관으로 열리는 ‘KBS의 정치적 독립적 사장 선임 법제화 방안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 즉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이라는 명제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이해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에 거의 준한다. KBS는 지난 20여 년 간 노조민주화, 사장과 이사 교체, 공영방송의 발전 방향 논의 등 중대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바탕에 깔고 시작했다. 하지만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력과 직결된 긴장의 고리를 끊을 수 없었고, 정치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공영방송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왔다. 방송장악 논란 속에 이병순 사장의 임기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KBS노조 16일 '사추위 도입 방송법 개정안' 환영 논평, 그러나...

▲ ⓒKBS노조 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KBS노조는 16일 ‘KBS사추위 구성 개정안 발의... 방송독립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이 14일 ‘KBS의 정치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도입’을 골자로 한 방송법 일부개정안 발의를 환영하는 논평이다.

이사회가 선임하고 대통령이 임명 제청을 하는 KBS 사장 선출 방식을 사추위가 추천하는 것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사추위는 이사회, 국회, 방통위, 전국단위 단체, 노동조합 등이 추천하는 각 분야 대표 20명 이하로 구성하고, 공개모집 절차를 거쳐 사장 후보자 1명을 이사회에 추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KBS노조는 개정안에 대해 “여야 7대4 또는 심지어 8대3 구조인 이사회의 정치 중립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며 “오는 11월 사장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이어서 개정안에 대한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관심이 높다”고 환영 의사를 표명했다.

최근 발간한 노보 311호에서도 “여야 추천 비율 7대4로 구성된 이사회가 누구를 사장으로 임명제청하더라도 낙하산과 정치적 부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당의 추천 위원도 과반을 넘지 않고 사장 선임 시에는 2/3 이상 찬성이 필요한 공영방송법의 경영위원회 구성방식"을 주목했다.

나아가 “공영방송 KBS가 진정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논의를 KBS의 민주적 지배구조 문제로 확대하는 한편 ‘(가칭)민주적 방송공사법(안)’ 추진 의지를 피력했다.

KBS노조는 당장 ‘정치 독립적 사장선임 법제화’를 ‘방송의 정치적 독립’의 요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추위를 구성하고 사장을 추천해 이사회가 선임토록 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다. 이같은 사추위 제안이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2003년 3월 박권상 전 사장이 잔여임기 70여일을 앞두고 하차했을 때 KBS노조는 35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사추위를 구성해 이사회에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이사회는 사추위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개방형 국민추천제’를 도입했으나 이후 서동구 씨를 내정함으로써 분란에 휩싸였다.

공영방송 사장 선출 방식에 있어 정치권력 종속성이 강한 현재의 이사회 선출 방식보다 각계가 참여하는 사추위 구성을 통해 국민의 여론을 반영할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다. 그런 점에서 이계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 사추위의 참여 범위, 국민의견 수렴 방식, 후보 추천 방식 등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KBS노조의 고민처럼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진 인물이 KBS 사장의 권한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의 수준은 얼마든지 높여낼 수 있다. 그런데 ‘정치 독립적 사장’을 뽑는 것을 곧 ‘방송의 정치적 독립’의 확대로 등치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승규 KBS노조 전 집행부가 정치 독립적(낙하산이 아니다)이라고 판단했던 이병순 사장이 지난 1년간 KBS를 운전하며 정치권력에 얼마나 휘둘려왔는가를 돌아보면 된다.

'편성.제작 주체의 자율성'과 '시민 참여.감시.통제'가 우선

우선 인정해야 할 점은 공영방송 KBS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독립된 관계가 아니라 상호 끊임없이 긴장을 유발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하고 탈정치적인 방식으로 공영방송의 독립을 사고한다면 문제는 더 꼬인다.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선임하고, 방통위원회 전체회의가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가 사장을 선임하고, 사장이 부사장, 센터장, 팀장을 선임하게 되어 있는 방송법의 골격을 바꾸지 않는 한 ‘형식적인 독립’은 어려운 일이다. 설령 방송법의 골격을 획기적으로 고친다 하더라도 공영방송이 갖는 정치적 성격을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장악으로부터 독립하되, 이를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정치독립적인 사장선임이 해법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사장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장치와 제도를 갖추는 문제이다. 이 장치와 제도를 갖추는 것이 곧 정치의 몫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탈정치, 비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정치적인 문제이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수신료를 재원으로 한다. 따라서 공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공적 가치는 공익적, 공영적, 공공적이라는 수사와 함께 표현된다.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정치수단화 하는 순간 공적 가치는 땅바닥에 추락한다. 이명박 정부가 이병순 사장 체제를 가동해온 KBS의 지난 1년의 몰골이 이를 반증해준다.

공적 가치 실현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공영방송 당사자들에게 있다. 편성.제작 주체들이 자율적인 판단으로 방송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 평가는 공영방송 존립 원천인 시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편성,제작 주체들의 자율적인 판단에는 정치적인 문제조차 온전하게 맡겨야 한다. 편성,제작 주체들이 정치적인 문제조차 자유롭게 방송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의 수준도 높아진다.

동시에 방송의 정치적 독립의 수준을 보다 확장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통제의 계기를 확대해야 한다. 시청자위원회라는 매우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그나마 밀실에서 쑥덕쑥덕해서 선정하는 시청자위원회 따위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낙타 바늘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퍼블릭엑세스 여건을 살펴보면 안습이다. 편성,제작 주체들이 만들어낸 방송컨텐츠가 공적 가치 실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정치권력 종속적이지는 않는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지 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민 참여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KBS노조가 진정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생각한다면 이 두 가지 과제에 주목해야 한다. 두 가지 과제가 일정한 수준에서 해결된다면 ‘정치독립적 사장 선임’ 문제는 오히려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민주적 공영방송법을 제정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역시 이 두 가지 과제 실현 방안을 법안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야 시민사회는 수신료 문제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1인시위 몸벽보 구호, ‘정치독립적 사장 선임을 위한 법제정에 즉시 나서라’는 호소, 지금 KBS노조가 만사 젖히고 나서서 설레발을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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