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이 '대연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 통합의 정치를 하자며 한 말이다. 그는 집권하면 새누리당도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중도, 보수 세력을 끌어안자는 전략의 일환인 듯한데 그러나 너무 나갔다.

안희정은 자신이 주장한 '대연정'과 관련해 "국가 운영에서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대연정, 헌법의 가치를 실천할 것"이라며 노무현까지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는 안희정의 명백한 잘못이고 중대한 오류다.

노무현이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본래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것이었다. 한나라당에게 연정을 하자고 한 건 그걸 이루기 위한 반대급부에 불과했다. 대선에 즈음하여 반대편까지 포용한답시고 박근혜 잔당인 새누리당에게까지 손을 뻗은 안희정의 대연정과는 출발부터 달랐단 얘기다.

안희정 충남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물론 안희정 말마따나 국민통합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통합이 중요하다 하여 고름마저 받아들일 것인가. 고름은 어떤 짓을 해도 살이 되지 않는다. 고름은 짜내고 도려내는 수밖에 없다. 아무나 받아들여서 생긴 잘못된 폐단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새누리당은 심판의 대상이다. 박근혜에 부역하여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종박들'에게는 그 주군에 상응하는 철저한 응징만이 답이다. 그들에게 양심이 있고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근신하고 자숙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이번 대선 자체를 포기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정우택 대표연설에서도 봤듯이, 그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정우택은 연설 내내 반성은커녕 남 탓으로만 일관했다. 그러면서 뻔뻔하게도 정권재창출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이들을 새정부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자고?

안희정의 대연정론은 한 마디로 촛불을 물 먹이는 소리다. 제 욕심을 위해 촛불민심에 재를 뿌리는 행동이다. 촛불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을 발본색원하고 적폐를 청산하여 정의롭고 깨끗한 새정부 새나라를 건설하자는 거다. 여기 어디에 새누리당이 발붙일 자리가 있는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다. 촛불이 만들어 갈 새정부에 거짓과 어둠의 본류인 새누리당이 한데 어울린다는 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나는 언어도단, 목불인견의 극치다. 빛이 어찌 어둠과 어울릴 것이며, 진실이 어찌 거짓과 어울리겠는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는 이제껏 안희정을 좋게 봤었다. 단정한 인상에다 행정경력도 준수하고, 그의 주장 또한 모난 데 없이 두루 포용적인 듯해서다. 그의 정책구상이 뭔가 모호하고 애매해서 다소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지겠지 그리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실수고 착각이었다.

밝히 말한다. 대연정을 논하는 안희정은 '반반의 대명사' 반기문과 별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반기문이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했듯이, 안희정은 '보수적 진보주의자'를 자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대연정은 이런 그의 정치적 스탠스에서 비롯된 고약한 결과물일 뿐.

전 정권과의 차별을 말해야 할 때 답습을 이야기하고, 심판을 말해야 할 때 파트너십을 말하는 안희정의 대연정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민주세력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화음(禍音)에 불과하다. 오죽 했으면 늘 웃는 얼굴로 안희정을 대하던 문재인마저 반대의사를 피력하고 나섰을까.

상식과 몰상식이 대립하는 사회에서 양쪽 모두에게 지지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안희정은 지금이라도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가 사랑한다는 노무현 이름 석자를 욕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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