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석훈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국에 시민단체를 하나만 남기라면 문화연대를 남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사실, 이 블로그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터라 문구가 정확하지 않고 시기마저 불분명하지만, 요는 문화연대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벌여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거다.

하긴, 굳이 우석훈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연대의 역할은 대중적으로도 퍽 알려진 편이다. 대중음악 개혁과 관련한 일련의 활동들은 2004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고, 문화교육과 관련한 논의들은 2005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대마 비범죄화에 대한 요구는 현실화되진 못했지만 세간의 이목을 끌어 사회적 담론을 촉발시켰다.

▲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전

한미FTAㆍ한양주택뉴타운ㆍ노들섬예술센터건립ㆍ동대문운동장 철거ㆍ콜트콜텍 사태ㆍ용산참사 등에 개입하는 활발한 활동들은 문화연대를 손꼽히는 사회운동단체의 포지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광화문을 광장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고, ‘민중의 집’을 설립해 실제 지역주민들과의 진보적인 접점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전국을 돌며 나눔의 영화관을 진행하기도 하고, 문화사회연구소를 발족해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문화유산에서부터 대중문화를 거쳐 스포츠 정책에까지, 정책입안과 제안에서부터 대중적인 캠페인을 거쳐 반정부 투쟁까지. 문화연대의 활동은 그야말로 숨가쁘고 전방위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문화연대 단독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명된 것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의도와는 상관없는 왜곡을 겪어야만 했던 사업들도 있다. 이슈에 근접해 싸우는 스타일은 ‘치고 빠지는 언론플레이용 활동이 아니냐’는 의혹 아닌 의혹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문화연대의 활동이 이전까지 문화운동이 가진 한계영역을 냉철하게 짚어내고 문화운동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화연대 활동이 10주년을 맞았다. 10년 동안 문화연대를 놓아주지 않는 고민이 있다. 물론, 문화사회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본질적인 고민이 하나 더 있다.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정부지원이 없었다곤 하지만 활동의 물적 토대는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악화일로를 걸었다.

문화사회를 계속 꿈꾸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10주년 기금마련전을 열었다.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전은 지난 13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북촌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실, 기금전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역설적으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획전에는 모름지기 기획에 어울리는 코드가 있고, 기획자의 심중을 읽어내는 게임이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금전은 일단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인만큼 이 ‘기획’이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시제목 ‘장수의 비결’은 기획의도를 투영하는 바가 있다. 이는 문화연대가 장수하는 비결을 얻고 싶다는 이야기이도 하면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활동가들과 예술가들, 나아가 문화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어떻게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계속 꿈꿀 수 있는지를 소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연대 10년의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 이 비결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임정희 문화연대 시민문화자치센터 소장은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이 “모듬살이의 윤리와 미학적 실천을 따로 분리하거나 어느 한 편만을 고집하지 않고, 양자를 접속하고 결합시키면서 다양한 예술의 길들을 만들어 오신 분들”이라고 소개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장수의 비급이다. 기꺼이 작품을 내준 작가들은 10년간 문화연대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함께 활동해 온 이들이다. 여기에는 대표나 고문, 운영위원이나 자문위원을 비롯한 회원들이 있는가 하면 문화연대 바깥에서 활동별로 연대를 표했던 이들도 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북촌미술관 역시 전시장을 기꺼이 열흘씩이나 무상으로 내줬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주재환, 김정헌, 민정기, 임옥상 등 민중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편견에서, 혹은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나는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낭만’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역사를 관통해 온 어떤 뜨거움, 현실을 응시하는 모종의 기운이 어른거린다고나 할까.

전시장 복판에 놓인 윤석남의 나무패널 작업이 반갑다. 작가가 유기견을 모아 기르는 ‘애신의 집’을 접하고 만든 수백여 개의 패널화 중 108번째 작품이다. 작가는 작년 아르코미술관 전시 전에 낱개로 파는 일이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맘이 바뀐 건지 아니면 그만큼 문화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물론, 이 역시 내 기억의 왜곡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전시장을 가로질러 끝까지 가서 방향을 틀면 사진작업들이 모여 있다. 최근 독일에서의 대규모 개인전과 유럽 순회전시로 세칭 ‘뜨는’ 작가 노순택의 작품이 걸려있다. 여성 명사들을 ‘망가진’ 포즈로 잡은 <미친년 프로젝트>로 유명한 박영숙은 여성의 신체이미지가 보여주는 색다른 가능성을 타진한다. 모퉁이를 돌면, 평화를 위한 예술활동이 법의 시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문제적 사진가’ 이시우의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사진섹션의 막바지에선 뜻밖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수 이상은의 작업이다. 이상은은 독특한 공간감을 보여주는 저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는 예술가로서 이상은의 다양한 활동을 증명하는 동시에 문화연대 외연의 광범위함을 증명해준다.

만화작품도 곳곳에 출품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만화가들 역시 그간 문화연대 활동에 있어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던 게 사실이다. 이희재, 박재동, 주완수, 김광성 등 중량급 작가에서 정재훈, 김대중 조윤혜까지 젊은세대의 작품을 아울렀다.

판화에는 김준권, 남궁산, 이철수, 김봉준 등이 ‘생명’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내놓았고 건축가 정기용, 조건영 등은 건축 프로젝트와 관련한 드로잉을 출품했다. 안상수, 노네임노샵, AGI 등의 디자인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에는 모두 57명의 작가가 100여점의 작품으로 참여하고 있고 오는 9월 22일까지 북촌미술관에서 계속된다.

▲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전

일궈온 성과가 폄하될 이유는 없다

문화연대 공동대표들은 전시 팜플렛을 통해 “문화연대는 문화운동에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운동에 문화적 관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전자의 목적을 위해서는 문화운동을 사회운동 전반과 접목시키려고 했고, 후자의 목적을 위해서는 문화운동이 다른 운동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화연대 10년을 돌아볼때, 문화연대가 사회운동 전반과 접목해 활동한 것만은 틀림없지만 문화가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내기에는 조금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이는 사회운동 전반의 인식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문화연대 자체역량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실, 문화연대가 문화운동의 의제를 도발적으로 제기하며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문화운동을 사회운동과 접목시키는 데 일정한 한계를 보이면서 사회단체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연대가 일궈온 성과가 폄하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런 우려나 비판들은 문화연대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온 것이지, 질시나 냉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문화연대가 운동의 의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문화운동의 외연을 넓혀온 것이 사실인 것만이 아니라, 문화연대는 지금도 그 어느 단체보다 뜨거운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연대의 불온한 상상력과 진보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도전이 장수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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