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반인줄 알면서 사원주택이 욕심나서 그렇게 했느냐?”
“그렇다”
“위장전입으로 처벌받는 국민이 많은데 고위 공직자는 면제받고 국민은 처벌받는 형평성 때문에 국민 입장에선 허탈감이 들 수 있다. 위장전입과 관련된 사건을 배당받아서 판단을 하게 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
“제가 그런 사건을 맡게 된다면 법대로 처리하겠다”

지난 14일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위장전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던 민 후보였던 터라 이에 대한 여야의원들의 집중 질문과 추궁이 쏟아졌다. 그리고 민 후보는 위장전입을 시인하고 거듭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 질의응답이 민 후보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스스로 위장전입을 인정한 꼴인데 그렇다면 민 후보는 어찌해야하는 것일까? “자기의 위장전입을 법대로 처리한다면 대법관으로써 어떤 처벌을 내릴까?”라는 질문이 아마도 민 후보의 용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듯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각 신문들은 오늘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민 후보의 ‘또 다른’ 위장전입을 다루는 한 편, 도덕성의 문제를 크게 제기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낙마하지 않을 가능성을 점쳤으며, <조선일보>는 아예 대놓고 두둔하고 나섰다.

▲ 9월 15일자 경향신문 9면 기사

경향, 위장전입 등 ‘의혹’들이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경향신문>은 1면에서 “서울 서초구 사원아파트를 매도하며 위장전입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제기한 “1988년 8월 민 후보자의 배우자(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으로 당시 MBC 기자)가 사원아파트로 전입신고를 했지만 실제 거주를 하지 않아 90년 7월 무단전출로 직권말소됐다”며 “두 달 뒤인 9월에 가족 모두가 살지도 않는 사원아파트로 재전입한 것은 또 다른 위장전입”이라는 말을 그대로 실었다.

이와 관련해 경향은 다시 9면을 통해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의 “법무장관, 검찰총장 후보자도 위장전입으로 문제가 됐다”며 “대법관, 법무장관, 검찰총장은 법치국가의 얼굴아니냐”는 쓴 소리를 차용해 ‘법치국가 얼굴이 위장전입하나’를 제목으로 뽑았다.

또한 ‘기자메모’에서 “내가 여당이다 보니 솔직히 크게 신경 안 쓰고 있다”는 여당의원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장관순 정치부 기자는 “과연 지금 한나라당은 자신의 주장처럼 ‘명품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남겼다.

이밖에도 경향은 민주당에서는 “이명박 정권은 ‘위장전입’ 정권”이라고 규정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14일자 신문에서는 ‘물러진 인사검증, 문제는 이중잣대’라는 기사를 통해 “문제는 이런 ‘의혹’이 이제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도 6면을 통해 민 후보의 ‘위장전입’ 사실을 전하며 사과한 것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 “도덕성의 하자가 공직에 부적합할 정도냐”(?)

그러나 <조선일보>는 위장전입이 뭐가 그리 큰 문제냐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4면에서 “위장전입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라면서 과거 국민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도 위장전입이 논란이 된 적은 있지만 위장전입 ‘하나만이’ 문제가 된 경우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사설을 통해서는 “국회 인사청문회는 그간 고위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했다”면서 “그러나 적잖은 문제를 드러냈다”고 했다.

이에 조선은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는 청문회에서 철저히 다뤄져야 한다”면서도 “다만 그 검증의 기준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 통념을 토대로 해서 후보자의 도덕성의 하자가 공직에 부적합할 정도의 것이냐를 상식의 저울에 달아보라”는 충고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해 그가 병역을 면제받은 이유나 아들국적 문제를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서울대 총장 시절의 공적을 살펴하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위장 전입 의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시절의 실적을 보라고 한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조선은 “우리 청문회도 후보자의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을 일반 국민의 건전한 상식의 토대 위에서 엄밀하게 검증하는 단계로 한 단계 올라설 때가 됐다”며 마무리한다.

<중앙일보>도 “20년 전 일을 지금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 9월 15일자 조선일보 사설

국민들, 위장전입 눈감을 수 있거나 아님 자신이 했거나?

위장전입, 논문중복 게재, 제자 석사학위논문을 공동저자로 게재, 세금탈루. 먼저 지적한다. 이것들이 인사청문회를 진행 중인 각 부처 장관 및 총리 그리고 대법관 후보자들의 도덕성에 관한 ‘의혹’들이다.

<조선일보>는 스스로 ‘인사청문회’가 공직에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도덕성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단순히 ‘후보자 흠집내기’로 몰아갔다. 각 후보자들에게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하고, 논문중복 게재나 세금탈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조선의 눈에는 후보자에 대한 흠집내기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일보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토대로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이다. 저 정도의 의혹들은 그냥 눈 감으라는 조선일보의 사설에 동의할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공직자로써 이 정도의 도덕성을 갖춰야지’라는 국민들의 상식을 조선일보가 너무 얕게 본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의 도덕성 자체를 조선일보가 낮게 보았던가.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장전입 정도는 눈 감을 수 있잖아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장전입 정도는 다 하잖아요. 그게 대한민국 국민 평균이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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