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방송이 지속적으로 경영을 합리화시키면서 8월에도 흑자 수지를 이어가 올 들어 8월까지 138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KBS 보도자료)

“이 일을 겪으면서 참 창피했습니다. 이렇게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버리는 KBS가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대표방송국이며,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라는 것이…” (KBS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사원)

공정·공익을 추구하는 KBS가 인건비 감축을 비롯한 ‘지속적인 경영 합리화 노력’으로 8월까지 138억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38억의 흑자 이면의 진실은 냉혹했다. 연중기획으로 ‘일자리가 희망입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KBS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둔 지난 6월 말부터 현재까지, 비정규직 사원들을 순차적으로 해고하고 있다.

KBS계약직지부는 지난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최소 201명의 연봉계약직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는 연봉계약직 420명 가운데 6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281명에 대해 계약을 유지하고 자회사 등으로 업무이관했으며, 89명은 계약 해지 대상이라고 밝혔다.

KBS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영을 합리화시키면서 8월에도 흑자 수지를 이어가 올 들어 8월까지 138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며 “8월 광고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억 원 줄어든 상황에서, 사업경비를 목표보다 32억 원 절감하고 인건비도 목표보다 16억 원 줄이는 등 경영 합리화 노력을 지속한 결과”라고 밝혔다.

▲ 1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앞서 KBS 경영개혁단은 지난 6월24일 KBS 이사회에서 ‘비정규직 인력운영안’을 보고했다. 운영안에 따르면 전체 연봉계약직 420명 가운데 39명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또는 연봉계약직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계약을 해지한다. 이 가운데 89명에 대해서는 완전히 계약을 해지하고, 292명에 대해서는 자회사 또는 도급 업체로 이관한다.

“이게 일자리가 희망이라고 외치는 공영방송의 모습?”

1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지부장 홍미라)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 ‘공정공익 KBS 비정규직 계약해지 328명’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기자들 앞에 섰다.

KBS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내기로 한 계약직지부 22명은 소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KBS를 향해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7월9일 계약직지부 노조원 13명은 KBS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달 3일 설립된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의 홍미라 지부장이 굳은 표정으로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여년을 KBS를 위해 묵묵히 땀흘려온 이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정규직의 1/3에도 미치지 않는 저임금을 감내해왔고, 정규직이 누리는 각종 복지혜택에서조차 소외되어 왔다. 이것이 과연 ‘일자리가 희망입니다’를 연중캠페인으로 외치는 공영방송의 모습인가?”

지난 2002년 8월 KBS에 입사해 7년 동안 보도본부 인터넷뉴스 팀에서 일하다 해고를 당한 한 노조원의 발언도 이어졌다. 비교적 담담히 발언을 이어가던 노조원은 그 동안의 설움이 떠올랐는지 한 동안 울먹였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될 때 KBS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저는 2년만 참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2년이 되던 날, 해고장이 내 손에 쥐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KBS는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회사경영문제 때문에 불안한 자회사로 가라고 합니다.”

▲ KBS로부터 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사원이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KBS 카메라 기자가 이를 촬영하고 있다. ⓒ송선영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공기업중 하나인 KBS가 앞장서서 부당한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며 “‘일자리가 희망입니다’라는 연중캠페인을 진행하면서도 안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치의 망설임없이 해고하는 KBS의 모습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고무효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우리는 수년간 연봉계약서를 반복 갱신하며 근무를 이어왔다. KBS는 비정규직보호법에 규정된 정규직 전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사원을 대량 해고했다”고 말했다.

“KBS, 형식적으로 교섭에 임하고 있어”

현재 계약직지부는 KBS와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일 첫 단계교섭을 시작으로 매주 본회의와 실무회의를 한 차례씩 개최한다. 지난 10일 진행된 1차 실무회의에서 계약직지부는 “비정규직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입장을 전한 반면, KBS에서는 “경영상의 필요로 인력 운용을 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미라 지부장은 이에 대해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형식적, 의례적으로 교섭에 임하고 있다”며 “노조가 회사 쪽에 ‘연봉계약직 운용 방안’을 비롯한 13가지 요구안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KBS노조와 관련해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문제를 풀고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선 노조가 필요했고, KBS노조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우리들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언론노조로 들어가게 된 것”이라며 “노조 설립 당시에 단체교섭과 관련한 조언을 해주셨고, 물품 등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 KBS계약직지부가 15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 소송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송선영
공정·공익을 추구하는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는 현재 연중기획 ‘일자리가 희망입니다’라는 캠페인을 방송하고 있다. KBS는 ‘경영’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순차적으로 해고하면서도 이를 ‘지속적인 경영 합리화 노력’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KBS에게 일자리는 ‘희망’일지 몰라도,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사원들에게 일자리는 ‘생존’이다. KBS는 수신료 인상만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는 본보기를 보이는 게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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