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선덕여왕>의 상승세가 주춤했었다. 무섭게 40%를 돌파한 이후 약보합권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전개가 늘어졌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이 월화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사극이란 점도 있었다. 사극은 주부들이나 중장년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다. 젊은 선남선녀가 나오는 트렌디 미니시리즈일 경우 두 말할 것도 없이 채널을 돌려버리는 주부시청자도 사극이라면 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

▲ MBC 드라마 '선덕여왕' ⓒMBC

주부시청자를 잡는 데 성공한다면 시청률 대박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렇다면 같은 사극인 <천추태후>는 왜 <선덕여왕>같은 성공을 못했을까? <천추태후>는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정통사극의 분위기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이러면 주부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천추태후>는 호흡이 길다. 다른 말로 하면 전개가 늘어진다. 요즘엔 화사하고 경쾌한 것이 먹히는 경향이 있다. <아내의 유혹>도 경쾌한 전개가 특징이었다. <선덕여왕>은 중요한 등장인물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흥미진진한 미스테리가 사이사이 끼어들며 경쾌하게 진행됐다.

그리하여 화사하고 경쾌한 사극으로서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선덕여왕>이 지난주에 늘어졌었다. 이것이 시청률 상승세가 주춤했던 이유다. 전개가 늘어진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신라라는 국호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신라의 의미 속에는 단지 나라 이름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덕만이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미실이 좌절해야 하는 이유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드라마 구조 속에서 왜 주인공이 성공해야 하는지, 왜 시청자가 주인공을 응원해야 하는지, 왜 악당이 실패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장치였던 것이다.

덕만의 꿈은 군사팽창주의?

<선덕여왕> 33회에서 드디어 신라의 세 번째 의미가 밝혀지고, 덕만이 그것을 자신의 꿈으로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덕만이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 미실을 무찔러야 하는 이유를 그 꿈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이란 것이 실망스럽다. <선덕여왕> 초반부부터 미실과 다른 덕만의 꿈을 주문했었지만 이런 걸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밝혀진 덕만의 꿈은 삼한일통, 즉 삼국통일이다. 신라라는 국호의 세 번째 의미가 이것이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덕만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모든 백성이 그 꿈을 함께 꾸도록 하겠다고 한다.

귀족과 백성들이 더 넓은 영토에서라면 모두들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실은 꿈은 없다고 했다. 백성들의 꿈이란 결국 잔인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덕만은 그 환상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왕과 귀족과 백성이 모두 덕만의 꿈을 공유하게 될 경우 신라에 닥칠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전쟁, 총력동원 체제일 뿐이다. 덕만의 꿈과 일제시대 당시 일본 우익의 대동아 공영권의 꿈이 다를 것이 무엇인가? 대외 전쟁으로 귀족과 화랑들을 독려하겠다는 덕만과, 전쟁으로 사무라이들을 다독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MBC 드라마 '선덕여왕' ⓒMBC

덕만의 또 다른 꿈이 필요하다

정조를 그린 <이산>은 상당한 지지를 받았었다. 그 드라마 속에서 정조의 대의명분은 무엇이었나? 바로 백성이었다. 노론의 정치보다 정조의 정치가 더 백성들에게 이로웠다. 그러므로 시청자는 정조를 응원하며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했던 것이다.

덕만에게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미실과 미실 주변에 모인 귀족들보다 덕만의 정치가 더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이길 바랬다. 하지만 덕만은 전쟁만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을 아무리 해도, 아무리 영토가 넓어져도, 백성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미실이 지적한 것처럼 전쟁으로 현재의 고통이 해소될 거라는 꿈은 환상에 불과하다.

물론 덕만이 왕권강화를 추구하는 것은 좋다. <태왕사신기>도, <제국의 아침>도, <이산>도, 모두 왕권강화가 중요한 테마였다. 왕권강화는 신권약화를 의미하는데, 신권이란 곧 귀족권이 된다. 귀족권이 약화되면 귀족들에게 수탈 받던 백성들의 삶이 나아진다. 이해관계상 필연적으로 자기 집안의 사익을 우선시하게 되는 귀족의 특성 때문에, 귀족이 발호하면 왕권과 국력이 함께 약해지기 마련이다.

전쟁은 왕권강화의 좋은 수단이 된다. 그리하여 미실은 전쟁을 피하려고 한다. 자기는 성골, 즉 왕족이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왕권과 귀족권의 대립이라는 테마를 차용한 건 좋지만, 주인공이 단지 전쟁만을 목표로 하는 건 불만스럽다. <이산>에서 정조는 백성들을 위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노론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왕권을 약화시키려 했다.

덕만의 꿈에도 <이산>에서처럼 ‘백성’이란 존재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가 더 강하게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덕만의 전쟁이란 결국 신라의 삼국통일이 되는데, 한국인의 입장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좋게 봐줄 수가 없기 때문에도 더 전쟁이란 꿈만으론 약하다. 전쟁이 완전한 감정이입의 동기가 되는 것은 <불멸의 이순신>같은 설정에서나 가능하다. 요즘 <천추태후>도 거란방어전이 시작되면서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신라의 전쟁은 이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은 시청자에게 또 다른 꿈을 제시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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