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대작, 배우 이영애의 복귀작, 거창한 수식어가 붙은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첫 회 드라마를 연 이는 역사적 인물 신사임당이 아니라, 가정과 일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서지윤(이영애 분)이다.

이보다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씨가 되듯, 이제 곧 교수 임용을 앞둔 서지윤은 그의 지도교수가 치적으로 내세운 안견의 금강산도에 대한 모호한 입장으로 교수의 눈밖에 난다. 이에 모든 강의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물론, 인맥으로 이어진 대학에서도 발을 붙이기 힘든 처지로 몰린다. 설상가상 남편의 사업마저 부도가 나서 하루 아침에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시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거리에 나앉다시피 한 처지에 놓인다. 1회는 이런 일과 가정 모두에서 위기에 몰린 서지윤이라는 현대의 인물을 통해 역사적 인물 '신사임당'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풀어내고자 한다.

사임당을 다시 생각하다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그 수많은 위인들을 제치고 아들과 함께 지폐에까지 그 위용을 떨친 인물. 유교의 이상적 나라로 여겨지는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뛰어난 성품과 높은 덕을 지녀 아들을 훌륭한 왕으로 키웠다는 태임을 본받겠다는 의미로 당호조차 사임당(師任堂)이라 지었다. 사임당은 유교국가 조선의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오랫동안 추앙된 인물이다. 비록 허구라지만 그런 인물이 자유분방한 예술적 영혼을 가졌으며, 심지어 결혼하기도 전에 사랑하는 이를 가졌었다는 '해석'은 자칫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상상력의 함정을 피해가기 위해 <사임당 빛의 일기>가 선택한 것은 교수 자리를 앞둔 지식인 여성이자, 한 가정의 아내인 서지윤이다.

하지만 실제 사임당은 아직 조선이 숭상하고자 한 유교적 가부장제가 전 사회적으로 고착화되기 전 조선 중기에 살았던 인물로, 그의 아버지 대에 이어 아들이 없었던 집의 아들잡이로 오랫동안 친정살이를 할 정도의 환경에서 자란 인물이다. 또한 유교적 가부장제가 정착되지 않았다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권리를 가지지 못한 여성의 존재로 시, 서화에 능하여 후대 학자들의 칭송을 받을 정도의 예술가가 되었다. 제 아무리 가정적 환경이 유리하고, 호의적인 남편을 가졌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누군가의 어머니, 현모양처로 추앙하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전형이 아닌, 사임당 자신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신사임당도 서지윤처럼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바로 이런 유교 사회의 틀 속에 갇힌 어머니이자, 아내를 넘어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신사임당을 해석해내기 위해, 현대의 여성 서지윤을 불러오는 구도를 드라마는 택한다. 하지만 그런 고려가 사극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기대에 반하여 채널을 돌릴 수도 있기에, <사임당 빛의 일기>는 목요일 첫 방에 2회 연속 방영을 통해 현대로 시작하여 과거의 포문을 열며 현대의 인물 서지윤과 역사적 인물 신사임당을 잇는다.

교수가 되기 위해 기꺼이 학장의 집에 가서 가사 도우미와 같은 일을 스스럼없이 해내는 서지윤, 하지만 정작 안견의 금강산도 발표장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못한다. 하지만 또 교수직에 대한 집념은 집요해 교수 사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난 뒤에도 기꺼이 학장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학자 서지윤과 생활인 서지윤의 이율배반적 삶은 이후 신사임당의 고된 삶의 '복선'으로 읽혀진다.

교수 사회의 비리를 통해 일하는 여성 서지윤을 그녀의 이상과 생활 모두에게 배반한 드라마는, 그런 그녀를 '판타지'처럼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고성으로 인도하여 몇 백년이 세월을 건너 뛰어 신사임당과 조우하게 만든다.

그렇게 오래된 일기를 통해 서지윤과 조우하게 된 어린 신사임당, 실제 그녀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당호 사임당을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사실 어쩌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 신사임당을 그렇게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조선 중기 안견의 그림을 보기 위해 기꺼이 담타기까지 하는 자유분방한 소녀(박혜수 분)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담타기 과정에서 만나게 된 운명적 남자 이겸(양세종 분)과의 인연을 흔한 첫눈에 반하는 남녀 대신, 이겸은 사임당이 그린 생동감있는 그림에서, 그리고 사임당은 그런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이해하고 배려해준 은인의 관계로 절묘하게 풀어내다. 덕분에 대표적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첫사랑이지만, 재능과 관심이 이어준 '소울 메이트'처럼 사임당과 이겸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이렇게 <사임당 빛의 일기>는 연방한 1,2회 역사적 인물 사임당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과연 그 접근에 시청자들이 호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아한 이영애라는 배우의 존재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1,2회의 <사임당 빛의 일기>는 증명한다. 과연 그 존재감을 넘어선 스토리와 연기력으로 생각보다 긴 30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엔 아직 채워야 할 빈칸이 꽤 남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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