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열리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이 숙박하게 된 공식 호텔의 객실에 비치된 극우 성향의 서적들이 치워진다.

대한체육회는 25일 “제8회 삿포로동계아시아경기대회(2017.2.19.~26. / 일본 삿포로) 조직위원회로부터 대회기간 중 선수단 공식 숙소인 APA 호텔(APA Hotel & Resort Sapporo) 객실 내 비치되어 있는 극우서적을 제거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호텔에는 한국을 비롯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약 2천 명이 숙박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앞서 대한체육회는 지난주 유선상으로 이와 관련한 조치를 대회 조직위에 문의한 결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으나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우리 측 입장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

이 공문에는 ‘스포츠를 통한 국제 교류라는 대회 취지와 맞지 않는 서적이 선수단 숙소에 비치되는 부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대회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조직위원회가 적절한 조처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헌장 제36조 부칙에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도 OCA 대회 관련 장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는 점을 언급, 삿포로 아시안게임 조직위 측이 OCA 헌장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문제의 서적들은 이 호텔 체인의 최고경영자 모토야 도시오가 쓴 서적들로 호텔 객실 내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가론', '자랑스러운 조국 일본, 부활로의 제언' 등 일본군의 위안부·난징학살 만행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호텔 객실 내에 위안부 강제동원과 난징(南京)대학살 등 만행을 부정하는 우익서적을 비치한 일본 아파(APA)호텔의 한 체인 영업장. Ⓒ연합뉴스

모토야 회장은 극우 서적의 영어판을 전파하기 위해 앞으로 5년 안에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에 100여 개의 호텔을 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모토야 회장은 극우 강연단체 '쇼우헤이쥬쿠'도 운영하고 있는데 쇼우헤이쥬쿠는 APA 호텔 본사 건물을 포함해 일본 전역에서 수십 차례의 강연을 연다. 이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연인원 1만 2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는 한국 선수단만 문제를 삼은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APA호텔 사태와 관련해 "일본의 극소수 극우주의자들의 도발에 대해 국가여유국(관광국)이 유관 조치를 발표했다"며 "모든 중국 여행사들이 APA호텔과 협력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APA호텔과 연계된 여행 상품 광고를 삭제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국은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원하지만, 역사 왜곡과 중국 인민의 감정을 해치는 도발적인 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누구든 마음대로 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며 난징대학살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일본 나고야 시장이 알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당초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조직위의 의뢰가 온다고 하더라도 책들을 객실에서 치울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던 APA 호텔 측은 이처럼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선수들이 묵을 삿포로 지역 호텔에 한해 객실에 비치된 문제의 극우 서적들을 치우겠다고 한 걸음 물러섰다.

국내 한 방송사에 의해 문제가 제기된 이후 일주일간 진행된 상황 변화다.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계아시안게임을 주최하면서 이런 호텔에 선수들을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대회 조직위의 무신경은 대단히 실망스럽고 한심해 보인다.

중국 국가여유국 일본 APA 호텔 사용중단 조치 [중신망]

아시아인의 화합을 다지는 축제를 개최하는 입장에서 선수들이 묵을 호텔에 이런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대회 공식 숙소에서 제외했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이런 세심한 검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은 대회가 개막도 하기 전에 아시아인들을 화나게 하고 상처를 입힌 셈이다. ‘아시아인 화합의 축제’라는 대회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한편으로 보면 한국인의 존엄을 짓밟는 책들이 널려 있는 호텔에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묵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대회 조직위나 호텔 측을 향해 중국과 같은 강한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우리 외교 당국이나 대한체육회의 자세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APA 호텔의 극우 서적 문제를 계기로 벌써부터 우려되는 문제는 고질적인 일본의 전범기 응원 문제다.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도 그렇고 3년 뒤 도쿄올림픽에서도 관중석에는 어김없이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전범기가 등장할 것이고, 경기장에 모인 우리나라 응원단을 비롯한 외국 응원단, 그리고 TV 시청자들은 그 어이없는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할 것이 뻔하다.

APA 호텔의 극우 서적 비치 논란을 계기로 대한체육회는 지금이라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경기장에 등장할 수 있는 전범기 문제에 대해 미리 대회 조직위 측에 대비를 요청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우리 민족에게 치욕과 고통을 안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휘날리는 경기장에서 뛰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으로서 아직도 온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이런 대규모 국제대회를 개최할 자격이 없는 국가다.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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