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과 김태호PD는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한다. <무한도전>에서 처음 놀랐던 건 2008년 식목일 특집에서였다. 멤버들이 모두 중국으로 가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특집은 재난을 당했다.

시청률도 최저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형편없다는 비난이 쇄도했던 것이다. 당시 <무한도전>은 사막에 나무를 심겠다며 가서는, 박명수가 공평하게 배급된 물을 몰래 숨기고 멤버들과 물싸움을 벌였다.

언론은 중국까지 가서, 환경 살리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이기적인 아귀다툼이나 벌였다고 혹평했다. 한 경제지는 <무한도전>이 추락했다고까지 했다. 많은 네티즌도 해외원정을 나가서까지 저질 몸싸움이나 벌였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묵묵히 욕을 먹던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시간이 흐른 후에 이렇게 말했다.

“박명수라는 악역이 다른 멤버들의 물을 훔쳐 독점하는 상황극을 통해 OPEC의 석유 독과점이나 글로벌 대기업의 자본독점, 제3세계에 대한 노동력 착취 등을 풀어내보는 것이 우리들의 방식이다.”

이때 놀랐다. 쓸 데 없는 저질 몸싸움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이 사실은 고도의 풍자극이었다는 얘기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특집에서, 훈훈하게 나무 한 그루 심는다는 남들 다 하는 설정을 뛰어넘어, 자원 독점의 문제를 제기하는 오락 프로그램. 박명수의 악행이 사실은 대자본에 대한 통렬한 야유였다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김태호PD의 사장님사랑

얼마 전 김태호PD의 한국방송대상 수상소감이 인상 깊었다. 그는 <무한도전> 스태프와 멤버들의 공로를 언급하면서 ‘최문순 전 사장님과 엄기영 사장님께서 힘내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다.

보통은 직원이 상을 받으며 사장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마치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듯한, 기회주의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에게 ‘딸랑딸랑’하는 것을 좋게 봐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대자본의 독점을 야유할 줄 아는 프로그램이다. 설마 그런 프로그램의 PD가 상 받으며 아부신공을 펼칠 리가 있겠는가.

김태호PD의 ‘사장님사랑’은 정반대의 의미가 있었다. 권력에 대한 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MBC는 권력으로부터 민영화 압력을 당하고 있고, 엄기영은 MBC의 수장으로서 그 압력의 전면에 노출된 사람이다. 김태호PD는 그를 응원했다.

이는 대자본의 물독점을 경계했던 것처럼, 대자본의 방송독점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악마 박명수’가 물을 독점했듯이, 악마 박명수가 방송을 독점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무한도전>과 김태호PD 놀라울 수밖에 없다

김태호PD는 올 1월 미디어법 사태 당시, “언론의 기본 기능인 견제·비판 기능이 상실됐을 때, (언론은) 단순전달밖에 못하는 거고, 상당히 편협한 여론형성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 ... 지금은 우리 제작진 눈에서 눈물이 나지만, 지금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으면 전 국민의 눈에서 눈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방송공공성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당시 그가 한 아래의 말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이번 싸움은 1%가 가지려는 언론에 대한 독점, 여론의 독점적인 형성에 맞서는 99%의 국민들의 싸움이다.”

2008년에 욕먹었던 식목일 특집에서부터, 2009년 수상소감에 이르기까지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는 그것은 바로, ‘약자에 대한 연대정신’이다. 강자나 대자본이 중요한 자원을 독점하여 99%의 약자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에 연민을 느끼는 마음.

그런 마음이 얼마 전 여드름브레이크 특집에서 철거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권력과 대자본을 견제하며 약자를 지키는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과 김태호PD가 놀라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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