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코미디계에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코미디언들이 유행어보다 학벌로 뉴스거리가 되어 화제를 모았다. 서경석과 이윤석이 대표적이었고, 후에는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까지 패스했다는 노정렬이 등장했다.

그들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서경석과 이윤석은 한동안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현재는 '재치'있는 MC의 역할로 자리매김해 버린 듯하다. 서경석의 경우 이런 고민을 MBC <황금어장>에서 공개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이윤석은 후에 박사학위까지 따는 바람에 '고학력' 이미지를 본의아니게 더 강화했고, 약골캐릭터도 큰 웃음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뭘해도 시청자들이 하는 말은 "정말 웃겨요"가 아니라 "(좋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박사학위를 따서) 대단하세요"라고 말했다. 토크쇼에서 동료들이 그들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시청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는 학벌에 대한 한국사회의 거대한 컴플렉스를 보는 듯하여 그 자체가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 ⓒ 황지희

그런 와중에 라디오와 케이블방송에서 모습을 보여왔던 노정렬이 지상파로 돌아왔다. 지난 14일 KBS <폭소클럽2>에 '뉴스야 놀자'라는 코너로 시사코미디를 선보인 것이다.

노씨를 지난 15일 서울 목동 CBS에서 만났다. <폭소클럽2>와 동명 프로인 CBS 라디오 <뉴스야 놀자> 생방송을 마친 뒤였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폭소클럽2>의 코너명이 현재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제목이 똑같다.
"양사 PD의 전격적인 합의가 있었다(웃음). '뉴스야 놀자'는 노정렬을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여겨 그대로 써도 좋다고 했다."

- 방송을 마친 소감은?
"<폭소클럽2>의 시청연령층은 10대, 20대보다는 30대에 가깝다. 그런데 녹화장에 가보니 방청객들이 대부분 너무 젊더라. 현장 분위기가 방송으로 그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방청객도 배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10대 중에는 3김이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래서 녹화를 할때 갭을 느꼈다. 현장에서는 맨 뒷줄에 앉아있던 어르신들이 크게 웃기도 했는데 방송에는 젊고 예쁜 방청객만 화면에 잡혔다."

- 화면에 잡히는 방청객들은 대부분 연예인 기획사에 소속된 신인들이라던데, 사실인가?
"요즘은 그런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생들이나 기획사 신인들이 앞줄에 많이 앉고, 그러다보니 화면에 많이 잡힌다."

- 방청객도 프로그램의 특성에 맞게 초대하고, 화면에도 그런 걸 반영하는 게 필요하겠다.
"맞다. 30대들이 <폭소클럽2> 방청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 코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폭소클럽2> 제작진들이 대선도 가깝고 해서 기존 코너들을 개편하면서 시사를 강화하겠다고 방침을 세웠다고 하더라. 내가 라디오에서 시사코미디를 계속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연락이 왔다. 나야 당연히 그럴 용의가 있었으니 받아들였다."

▲ KBS <폭소클럽2> '뉴스야놀자' 한 장면. 이회창씨의 정계복귀를 두고 역대 대통령과 대선후보들의 가상반응을 코미디언 노정렬이 각 인물별 성대모사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 어떤 식으로 진행할 예정인가. 시사코미디는 늘었지만 정치풍자는 적다.
"수위조절이 늘 고민이다. 라디오에 비해 좀더 조심스럽다. 코너의 방향에 대해서는 원칙이 있다. '뉴스야 놀자'는 그 주에 일어났던 시사사건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정치인들은 실명으로 풍자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동네 동장님 선거' 식으로 비유해서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성대모사로 웃기는 게 아니라 '소재'로 재미를 주려고 한다. 제작진들도 현재 큰 웃음이 펑펑 터지지 않아도 좋으니 이 색깔을 유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대선용으로만 소모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괜찮다.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 일반시민들은 내가 무얼하는 코미디언인지 모르니까 그걸 알리기만 해도 수확이 있다. 방송에 무엇을 담느냐가 문제다. 지난 10년 동안 집회현장이나 세미나를 지켰고, 라디오에서 시사코미디를 꾸준히 했다. 그것들을 펼칠 수 있으면 된다."

- 일반 코미디에 대한 갈증은 없나.
"물론 있긴 하다.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 같은 코너에서 내 색깔을 살린 코미디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 '시사코미디'를 할 때 라디오와 TV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차이가 따로 있나.
"라디오는 소리에만 집중해서 스토리를 따라가게 된다. <폭소클럽2>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도 히어링이 강한 코미디다. 아무런 장치도 없고, 분장도 특별히 하지 않으면 TV에서 집중이 어렵다. 그래서 이번 방송에서도 각 정치인의 실물크기 사진을 무대에 세웠다. 약간의 몸개그를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중이다."

- 개편된 <폭소클럽2>을 평가해 달라.
"이제 시작이고, 시사코미디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한번 더 실감했다. 박준형의 '기호0번, 박후보'만해도 포인트를 조절하는 게 참 어렵다. 정치인들의 유세장면을 똑같이 패러디하는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뒷부분에 나오는 개그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그 코너는 박준형만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계속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중요한 연기를 하고 있다. 그것을 마치 박준형이 후배들을 데리고 나와서 또 주인공을 한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네티즌들이 있다. 14일 '허접한 매거진'은 언론비평을 위해 만든 코너다. 그런데 강약조절이 잘못되면 원래의 기획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 '허접한 매거진'은 된장녀들의 신문읽는 법을 풍자하는 줄 알았다. 아닌가?
"아니다. 방송에서도 봤듯이 신정아 사건 등 주요 시사 이슈들을 언론이 어떤 수준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지를 풍자하는 코너다."

- 다음주에는 어떤 내용을 보여줄 예정인가.
"BBK문제나 삼성비자금 등 할 얘기가 많다. 그런데 다음주 축구 때문에 결방될 것 같아 걱정이다(웃음). 정치풍자보다 기업풍자가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삼성을 소재로 코미디를 만들 때 시사코미디가 기업을 때려 죽이자고 만드는게 아니다. 코미디언은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한다. 삼성을 좋아해서 삼성물건만 쓰면서 기업이 무너지면 어쩌냐고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양논리를 다 포함해서 코미디에 녹여내야 하는게 중요하다."

▲ KBS <폭소클럽2> '뉴스야 놀자' 한 장면.

- 다른 프로그램들 모니터도 하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그날의 9시 뉴스는 반드시 챙겨보고, 다른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도 거의 듣는다. 인터넷에서 기사도 많이 읽고, 돌발영상도 자주 챙겨 본다."

- 혹시 <재용이의 더 순결한 19>에서 연예인 결혼을 다룬 장면 봤나?
"물론 봤다. 끝까지 '결혼 축하합니다'같은 형식적인 멘트를 하지 않더라. 정말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만 계속 알려주고, 1위에게만 유일하게 축하한다는 자막이 나가면서 이재용 본인은 일부러 소리 나지 않게 박수를 쳤다. 연예정보프로그램들이 일반적으로 스타결혼 소식을 전할 때와 완전히 달랐다. 나는 그 프로가 '연예시사코미디'라고 생각한다."

- 시청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사는 모든 게 시사정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코미디를 일반 코미디와 시사코미디로 선을 그을 필요도 없다. KBS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의 경우도 우리 사회의 여러면을 건드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코미디로 분류되어도 괜찮다. 시사코미디들이 처음 볼 때는 허접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코너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하차 하고 있다."

- <개콘>이나 <웃찾사>같은 경우 대학로 공연장에서도 접할 수 있는 개그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데, 사실 <폭소클럽>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공연장의 역할이 크다. 그곳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걸러진 코너들이 방송에 나간다는 장점도 있고, 관객들이 그런 형식의 공연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아직 시사코미디를 전문으로 공연장에서 보기는 힘들다. 돌아가신 코미디언 김형곤 선배님이 그런 고민 때문에 공연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적인 유머가 반, 정치적인 유머가 반이라 현재 내가 하는 코미디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것도 꿈중의 하나다. '노정렬의 시사쇼'를 매일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심의도 없고 검열도 없어 어떤 코미디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후배 중에 강유미나 김세아 등은 시사코미디에 대한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 그런 후배들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

- 학벌 이미지가 부담되지 않나?
"처음에는 화도 많이 났다. 공채로 들어온 것에도 별의별 말들이 다 있었다. 지금은 괜찮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런 면은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졌다. 이제는 노정렬하면 재야현장에서 활동하고 시사코미디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많이 생겼다."

- 김구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비슷한 시기에 인터넷에서 활약하던 인물이다.
"당시 김구라의 이른바 '욕설방송'은 인터넷에서 방송과 관련된 금기를 깨는 묘미가 있었다. 그런 장점이 공중파방송에서도 이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CBS <뉴스야 놀자>도 데일리로 맡고 있듯이 라디오나 케이블 방송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활동하는 코미디언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중파에서 활약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 중간에서 적절한 역할을 맡는 사람도 필요하다. 만족한다."

미디어스가 그에게 주목한 이유는 두가지다. 서경석이나 이윤석처럼 자꾸 망가지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이 느끼는 벽을 허물려고 들지 않고, 데뷔 이후 지속적으로 시사코미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재미가 없기 쉬운 시사코미디를 고학력자가 하자 두배로 어렵게 느껴지는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두번째 이유는 인터넷이나 라디오, 케이블방송에서 활약하던 방송인들이 쏙쏙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개성 강한 캐릭터로 주 게스트의 말에 맞장구만 치던 기존 패널들의 역할을 변신시켰고, 김구라는 방송용어의 고정관념을 깨며 또다른 트랜드까지 만들고 있다. 금기를 깨는 재미들이 시청자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부디 노정렬이 정치풍자 코미디를 활성화 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기를 바란다. 대선이 끝나도 쭈욱.

KBS <폭소클럽2>는 어떤 프로그램?

지난 9월 5일 시간대를 이동한데 이어 지난 14일 방송에서 대폭 개편한 코너들을 선보이고 있다. 스탠드 업 코미디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자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레이나의 예스캠프'는 유쾌한 삶과 즐거운 인생을 외치는 레이나 선생님이 등장해 활기를 주고, '기호 0번 박후보'는 박준형이 기상천회한 공약과 그의 추종자들이 벌이는 폭소만발 연설현장을 보여준다. '뉴스야 놀자'는 노정렬이 한주간의 정치, 사회, 경제 등의 핫이슈를 정렬해보는 시간이며, '백재현의 개그클리틱'은 개그 닥터 백재현이 신인들을 진단하고 치료해 준다. 이 밖에도 '실시간 검색 순위', '허접한 매거진', '얼렁뚱땅 발명왕', '동물을 웃겨라' 등의 코너가 있다.

CBS <뉴스야 놀자>는 어떤 프로그램?

평일 오후 12시 5분~1시 30분까지 하는 CBS 라디오 시사코미디 프로그램. 노정열이 MC를 맡고 강유미, 양희성, 김세아, 강일구 등의 코미디언들이 출연한다.

코너들이 '시사코미디'에 맞게 알차게 배치되어 있다.

매일 코너들은 이런 게 있다. '남과 여'는 개그맨 양희성과 노정열이 출연하는 시사 꽁트로서 생활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문제를 꼬집어 낸다. '잘했군 잘했어'는 장소팔, 고춘자류의 시사 만담 개그로 양희성과 노정렬이 출연한다. '뉴스 통해야 하느니라'는 황당뉴스를 전해주는 시간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재미본다' 시간에는 Fun 경영을 전파하고 있는 유머강사 전승훈이 나와 특강을 펼친다. '신랄토론 할말은 한다' 코너는 화제의 이슈에 대한 풍자토론 프로그램으로 DJ 김대중, 이회창, 김용옥 교수, 숭그리당 당수 김정열 등의 성대모사를 통한 가상 토론형식으로 진행된다. '클릭 투데이'는 인터넷 화제뉴스를 소개한다.

주간코너에는 코미디언들과 가수가 주로 직접 출연한다. '김세아의 아줌마 열전'은 열혈 아줌마의 눈으로 본 세태 고발 꽁트다. '강일구의 시선분산'에서는 강일구와 노정렬이 배철수, 한석규, 손석희, 최양락 등의 성대모사를 구사하며 시사리포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강유미의 뉴스속으로 고고'는 부조리 현장을 집중탐사하는 형식의 꽁트다. '고현진과 나무자전거의 시사 노래방'에서는 방송인 고현진 씨와 포크 듀오 나무자선거가 나와 주요 시사 현안에 맞는 노래를 찾아 가사를 바꿔 불러보는 시간을 갖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