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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낭비'라는 반기문과 조선일보대선 전 개헌이냐 아니냐로 국면 전환, 선진국도 잦은 선거하는데…
김민하 기자 | 승인 2017.01.24 12:26

개헌 논란이 선거 일정에 대한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전 개헌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선거를 여러 번 치르는 것에 대한 부정적 소신을 밝혔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를 통합하고 화해를 도모하려면 대선과 총선을 하루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대선과 최소한 국회의원 선거라도 같이 하면 대선에 훨씬 치중을 하기 때문에 분열될 소지를 줄일 수 있고 국가적 재원도 절약할 수 있다”면서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이런 취지의 주장은 23일 KBS와의 대담 프로그램에서도 반복 피력했다.

반기문 전 총장의 발언에 대해 조선일보도 즉각 엄호사격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24일자 <文·潘 "선거 횟수 줄이자", 옳은 방향이다> 제하 사설에서 선거는 갈등을 수렴하는 과정이지만 국론분열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모든 게 정치 논리로 재단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나서게 된다. 오죽하면 '선거 망국론'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라며 개탄했다. 조선일보는 또 “전국 단위 선거를 한 번 치르려면 수천억원의 돈이 들어간다”며 “선거를 최소한으로 줄여 정치 과잉을 막을 수 있다면 이야말로 정치 개혁일 것”이라고도 했다.

반기문 전 총장과 조선일보가 이런 스탠스를 취한 것은 우선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걸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그간 대선 전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며 대선 이후 4년 중임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해왔다. 제3지대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개헌론자들이 대개 분권형 또는 내각제에 가까운 개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입장을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개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분권형 또는 내각제 개헌론자들과 4년 중임제론자들의 대립으로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언급인 셈이다.

조선일보 24일치 사설

그런데 반기문 전 총장의 선거 일정에 대한 언급 역시 ‘4년 중임제’를 연상케 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를 같이 하자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 번째는 2017년 선출할 대통령의 임기를 2020년 총선까지로 단축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목을 4년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점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연합뉴스 인터뷰 이전에는 대선 전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는 점까지 묶어서 보면 결국 임기 단축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다시 문재인 전 대표를 개헌논란에서 고립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른바 여권 잠룡 중에서도 4년 중임제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23일 보도에 따르면 반기문 전 총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캠프 영입을 제안했다고 한다.

반기문 전 총장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시사해 이들은 이제 ‘같은 편’으로 묶일 수 있게 됐다. 결국 이 그림은 분권형 또는 내각제 개헌이냐 4년 중임제냐의 구도를 대선 전 개헌이냐 아니냐로 옮겨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굳이 반기문 전 총장의 제안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전 대표의 언급까지 인용한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이다. 만일 문재인 전 대표 측이 대선 전 개헌은 어렵고 이를 핑계로 한 정계개편은 거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 조선일보는 ‘말 바꾸기’, ‘진정성 없는 정략적 4년 중임제 제안’ 등의 관점으로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정략의 문제를 떠나 주장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이 논란이 민주사회의 기본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진행되는 것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반기문 전 총장은 선진국일수록 선거를 축소해서 진행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으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상원과 하원이 분리돼있는 국가에서 상원의원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급격한 인적구성의 변동이 양원제에서 상정하는 상원의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검사까지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선거를 치르는 횟수 자체는 한국보다 많을 수 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이런 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선거를 ‘효율적 권력 운용’의 관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현대적 대의민주주의의 구성 원리와 배치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통한 권력 창출을 일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 방법이 결과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원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빈번할수록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의 논리적 귀결은 결국 선거가 없다면 가장 효율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적 경험으로 보듯 독재는 유지될 수 없으므로 끝에 가서는 반드시 사회적 비효율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에게 선택권을 주고 동시에 정치적 책임의 일부를 지우는 것이다. 이게 선거를 통해 정부와 입법부의 대표자를 뽑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3일 오후 KBS에서 생방송으로 방송된 특별기획 '대선주자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1.23 [KBS 제공=연합뉴스]

꼭 원론을 통해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선거 일정이 행정부에 대한 대중의 ‘견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 중에 실시되는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각종 보궐선거 등은 대개 정권에 대한 대중의 중간평가로 기능한다. 박근혜 정권의 파탄적 정치에 대한 사실상의 파산을 선언한 2016년 총선의 결과가 대표적이다.

대중의 이러한 중간평가 과정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권은 지금도 파탄적 정치를 계속하며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통치로 일관하였을 것이다. 조선일보 등은 선거를 치를수록 나라가 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퇴행’의 근본적 책임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를 기만적으로 통치하는 정치권력에 있는 것이지 선거 일정에 있는 게 아니다. 반복된 선거 일정이 파탄의 원인이라는 인식 자체가 오히려 기성 정치 타락의 현상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엘리트주의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인식은 거의 언제나 대중에게는 독이 되고 기득권 정치에는 득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기문 전 총장이 현실 정치에 몸을 던진 이상 정략을 말하는 것까지는 시시콜콜 비난하고 싶지 않으나, 적어도 정론이 무엇인지는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기문 전 총장과 같은 방식으로 제도를 대하는 태도가 결과적으로 제도와 현실정치의 분리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즉, 이 구도에서는 문제의 원인이 오히려 해결책을 말하는 본인이다. 이를 지적해야 할 언론이 임무를 방기하고 정략에 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대선은 언론과 정치의 이런 기만적 풍토를 일소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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