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MBC <이재용 정선희의 기분 좋은 날>의 한장면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부부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부부가 주유소에 갔다가 우연히 힐러리의 옛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물었다.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 그러자 힐러리가 말했다고 한다.

"아니, 바로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

이 얘기를 들을 때만해도 미국도 별 수 없구나 하는 비뚤어진 마음을 품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고, 남편 대통령 만든 게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일까라는 의아함 때문이다.

하지만 몇년 뒤 힐러리는 2008년 대선에 여성 최초의 대통령이 될 꿈을 키우고 있다. 힐러리의 말대로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충분히 예행연습을 했을터이니, 본인의 대선운동도 기대된다.

이런 상황이라 우리나라 대선후보 부인들에 대한 관심도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국제인답게 살고 싶었다. 이순자 여사 이후 최초의 관심이었다.

MBC <이재용 정선희의 기분 좋은 날>이 15일부터 대선후보의 부인들을 스튜디오에 등장시켰다. 여기에는 지지율과도 상관이 없는 건지 KBS, MBC 합동토론에도 못나온다는 권영길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부인은 차례로 나오고, 이회창 후보의 부인은 나오지 않는다.

15일에는 정동영 후보의 부인 민혜경 여사가 나왔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들어보자. 진행자들이 참 예의가 바르다. 민혜경 여사의 피부가 좋다고 칭찬하고 그 비결을 물어봤다. 이어지는 방송은 기존의 아침 프로그램들과 차이가 없었다. 자택을 공개하고 요리실력 알아보고, 결혼 과정의 에피소드를 듣는 방식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러 전략들도 보였다. 아들 둘이 군대에 다녀왔음을 강조하고, 종교인임을 보여줬다. 종가집 며느리라는 것을 수차례 이야기 해 평범한 주부임을 각인 시켰다. 표를 깎아먹을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참으로 답답하다. 대통령 후보 부부의 사적 영역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고 그것을 해소해주는 것도 방송의 역할일지 모른다. 가족안에서의 역할을 보면 그 후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정말 주부들이 대통령 후보 부인이 김치를 잘 담그는지 아닌지 그런게 궁금할까? 아니면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다고 믿기는 할까? 차라리 어느 홈쇼핑에서 김치를 사먹는지는 알고 싶다.

진짜 궁금한 건 다른데 있다. 아내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으로도 남편을 지지하는지, 주부들이 투표를 해야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여성들이 관심이 많은 정책들과 관련해 어떤 조언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그런게 후보자 부인이 할 수 있는 내조가 아닐까.

그것도 못하겠다면 후보부인들은 요즘 악수를 몇번이나 하는지, 누구를 만나고 다니고 어떤 말을 주로 하는지라도 알고 싶다.

더구나 영부인이 된다면 정치나 사회복지 분야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계획인지, 아니면 조용히 한복입고 행사만 같이 다닐건지라도 알아야 투표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아예 아주 엉뚱한 후보 부인이 나와서 "제발 남편 좀 말려달라. 정치 한다고 나선 이후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라고 심경을 토로하거나, "집안에서 손도 까닥안하면서 여성정책 내거는걸 보면 아무리 남편이지만 정치인에 관한 혐오증을 느낀다"라고 고백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30초 지지 유세'라도 좀 하길 바란다. 어차피 각 후보들이 TV에 나와 후보자 연설도 하고 있지 않나. 선거법 때문인지 방송이 두루뭉술해서 색깔이 없었다. 마지막에 후보가 나와 '영상편지'까지 보낼 쯤에는 하품이 나온다.

정말이지 국제인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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