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과 액션, 미스터리와 멜로 등 다양한 장르가 잘 버무려져 맛있는 비빔밥 같은 KBS 2TV 미니시리즈 <얼렁뚱땅 흥신소>(박연선 극본, 함영훈 연출)는 결국 저주받은 걸작으로 끝나는가?

실종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부자 동네 사모님의 의뢰로 얼렁뚱땅 흥신소 일을 시작했다가 황금 찾기로 번져나간,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시청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애써 생각하려 해도 안타까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얼렁뚱땅 사건이 전개되어 황당무계한 이야기의 재미가 만만치 않은데 시청률이 너무 저조하기 때문이다. 유쾌·통쾌·상쾌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까지 갖춘, 그래서 최근의 대작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재미를 소수의 마니아만 즐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드라마이다.

▲ KBS <얼렁뚱땅 흥신소>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박희순, 류승수, 이민기, 이은성, 예지원 등 주연배우와 박연선 작가 그리고 함영훈 PD ⓒKBS
이쯤이면 도대체 무슨 드라마이기에 이렇게 설레발을 떠는 것일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얼렁뚱땅 흥신소>를 "우연히 고종의 보물찾기에 나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려낸 드라마"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족지혈(鳥足之血), 곧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박연선 작가와 함영훈 연출이 여러 가지 장치들을 통해 펼쳐보이는 다양한 사연들이 각개전투로 펼쳐지다가 '황금 찾기'로 삼투압되는 과정의 재미는 상상 이상이다.

'구조'와 '등장인물'의 장점·매력 모두 갖춘 걸작 드라마

덕수궁 근처의 낡은, 하지만 이름만큼은 휘황찬란한 '황금빌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호돌이 태권도장' 사범 '무열(이민기 분)'과 만화가게 주인 '용수(류승수 분)', 그리고 점집 '아란샤'의 타로 마스터 '희경(예지원 분)'은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면서 비루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망해서 문을 닫은 흥신소 사무실에서 자장면을 먹다가 졸지에 흥신소 직원으로 오해받은 무열과 용수는 실종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부자 동네 사모님의 사건 의뢰에 난감해하다가 거액의 돈을 보고 바로 실종 고양이 수색 작전에 나선다.

백수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희경까지 합세하여 고양이를 찾던 이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황금빌딩의 은밀한 곳에서 정체불명의 시체와 나뭇잎 모양의 황금 3개, 그리고 해독하기 어려운 지도를 발견하게 된다. 3개의 황금을 나눠 갖고 싶은 마음과 달리 어쩔 수 없이 정직하게 경찰에 신고하고, 이 일로 방송 뉴스에 나오는 즐거움을 누린다. 이처럼 이들 3인방은 비루한 일상 속에서도 건강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비루한 일상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여자 '은재(이은성 분)'가 찾아와 거액을 내놓으며 어릴 때 실종된 동생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사건을 맡으면서 180도 변하기 시작한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의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3인방은 은재의 사건 의뢰가 황금이 숨겨진 곳을 표시한 지도 3장을 찾기 위한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면서 자중지란에 빠졌다가 '황금 찾기'로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역시 지도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폭 보스 '박민철(박희순 분)'과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이들의 일상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 과정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각 인물들의 아픈 과거는 웃음과 눈물이 뒤범벅된 채 미스터리 구조 속에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발랄한 상상력, 세련된 연출, 최적 캐스팅

광고 하나 붙지 않을 정도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얼렁뚱땅 흥신소>는, 그러나 드라마의 핵심인 '구조'와 '등장인물'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 매력적인 드라마이다. 발단에서 전개와 위기, 절정을 거쳐 결말에 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 같지만, 등장인물들의 사연들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다가 '황금 찾기'를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모이는 방식은 다음 장면이나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직선 구조에서 맛보기 힘든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얼렁뚱땅 흥신소>는 극장이 아닌 집에서 편안하게 시청하는 연속 방송극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직선 구조의 단조로움을 극복한 드라마이다.

또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최적의 캐스팅에 근거한 등장인물의 창조도 <얼렁뚱땅 흥신소>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태권도 빼고는 모든 것에 다소 어눌한 느낌의 무열을 제대로 살려낸 '이민기'와 엄청난 분량의 만화 감상에서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삶의 의욕은 별로 없어 보이는 용수를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류승수'는 물론이고, 신통력보다 연기력으로 점을 치며 생활하면서도 명품에 대한 욕망을 지우지 못해 짝퉁으로 무장한 속물근성을 멋들어지게 소화한 '예지원'이 아니었다면 <얼렁뚱땅 흥신소>는 고추장 없이 얼렁뚱땅 대충 비빈 맛없는 비빔밥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 ⓒKBS
물론 상황에 맞는 역할에 몰두한 결과 틀에 박힌 듯 정형화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다. 하지만 '고종이 숨긴 황금'이 숨겨진 곳을 알 수 있는 지도 3장을 찾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 인물의 사연들은 이 같은 등장인물의 정형성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시작은 고양이로부터'와 '죽은 자는 수다스럽다' 등 매회 사건의 단서처럼 달아놓은 부제를 통해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리해가는 재미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나 드라마, 광고의 한 장면이 어떻게 패러디되었는지 확인하는 재미는 말 그대로 '덤'이다.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와 <연애시대>로 주목받은 박연선 작가의 발랄한 상상력과 <드라마시티>와 같은 단막극을 통해 기본기를 다진 함영훈 연출의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의 시청률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를 보다가 뒤늦게 궁금증이 작동한다. 그들이 찾는 황금이 왜 하필이면 비운의 조선 황제 ‘고종’이 남긴 황금일까? 고종이 남긴 황금이 그 무엇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분명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렁뚱땅 흥신소>의 마니아 시청자들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추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얼렁뚱땅 재미있지만 결코 얼렁뚱땅 만든 것 같지 않은 드라마에게 '저주받은 걸작'이란 타이틀은 불명예일까 명예일까?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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