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속된 말로 난리가 났다. 2012년 10월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MBS 지분 30%를 매각해 부산·경남지역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등에 사용하려던 계획이 들통나자,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당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음모이며 공영방송 MBC 민영화의 전주곡이라는 거센 반발이 빗발쳤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2016년 여름에도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을 매각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MBC에서 주는 돈이 너무 적어 MBC 지분이라도 팔아서 장학금 규모를 늘리고 싶다’는 뜻을 밝힌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MBC가 해마다 정수장학회에 주는 기부금 규모는 20~30억원 수준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보도에 대한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라고 할 정도로 ‘쿨’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4년 전과 견줘보면 ‘격세지감’이며 ‘천양지차’다. 매각 의혹을 바라보는 이른바 ‘프레임’도 재미있다. ‘박정희 정권이 부정취득한 장물로 꼽히는 정수장학회를 매각해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식이다. MBC 민영화의 전주곡이니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슈 거리조차 되지 않는다는 듯한 이런 사회적 반응은 뭔가가 바뀌었다는 것일 게다. ‘뭐가 바뀌었지?’에 대한 궁금함이 따라붙는다. 무엇보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채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대통령의 처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김재철 이후 MBC의 몰락도 빼놓을 수 없다. 저널리즘이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 아니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을 때,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건은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이는 것이리라.

하지만 개운하지 않다. MBC의 저널리즘이 다시 살아나면, ‘MBC 민영화의 전주곡’이라는 사회적 반발이 거세질지에 대해서는 자신하기 어려워서다. 오늘 국회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청문회가 열린다고 한다. 현재 6대3구조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구성을 여야 7대6으로 바꾸고 MBC 사장을 임면할 때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방송문화진흥회법을 바꾸는 게 핵심이다. 개정안에는 사장이나 편성 책임자를 포함한 방송사업자와 기자·프로듀서 등 보도여론 종사자가 동등하게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제작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편성규약을 제정해 적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마땅히 MBC에 적용돼야 할 사안들이다. 무력화한 MBC 노사 간 옛 단체협약에는 공정방송을 위한 비슷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법적으로 이를 제도화시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게다가, 언론장악방지법은 편성위원회 동등 구성이나 편성규약 제정 적용의 경우 이른바 공영방송으로 불리는 KBS나 MBC만이 아니라 나머지 지상파방송,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에도 적용되는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 보도여론을 다루는 방송이라면 지켜야 할 기본으로 본 것이다.

정수장학회 MBC 지분 매각 시도에 대한 4년 전과 지금의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라는 식의 뜨악한 반응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도여론을 다루는 방송사라면 응당 지켜야 할 기본을 MBC는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고, 정수장학회 매각 여부는 그걸 잘 지키고 못 지키고 하는 것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한국사회를 괴롭힌, ‘박정희 신드롬’이 딸과 함께 몰락하며 한 시대의 매듭을 지어지는 바로 그 맥락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매듭 이후 MBC에는 더 이상 과거에 내세워온 논리나 정당성은 통하지 않을 듯하다. 매듭 이후 시민들이 들이댈 잣대는 ‘민영화 여부가 기본을 지키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라는 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매듭 이후’ 언론장악방지법이 MBC와 관련해 쏟아내는 방향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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