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로야구 전면 드래프트가 실시되었다. 처음 실시된 전면 드래프트에 관심도 뜨거웠다. 생중계 시청율도 준수하게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구단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대략적인 의견을 종합해보면, 흉작까진 아니지만 딱히 훌륭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선수들의 수준 말이다.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신정락(LG) 선수만 해도 웬만한 야구팬 아니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이겠지만, 2002년 월드컵 때문이라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올해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들이 운동을 시작할 때쯤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축구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때였다. 운동에 소질이 있거나, 재능이 있는 이들이 축구 선수부터 꿈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축구에는 유망주가 차고 넘쳐나지만, 야구는 상대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물증은 없다. 하지만 심증으로는, 정황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고, 설득력도 다분하다 여겨진다. 한 세대의 꿈과 욕망이 작동하는 원리는 집단적 최면과도 같은 무언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좌우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말하자면, 2002년 월드컵은 그 무렵 운동선수의 꿈을 품던 아이들에게 작용한 집단 최면이었을 수도 있다.

말머리가 길었다. 나로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나로호는 일단 실패했다. 발사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건 국산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수십, 수백 차례 로켓을 발사한 경험이 있는 러시아 기술진들이 7번이나 연기한 끝에 발사체를 쏘아 올린 것에 대해 단순히 그 발사대의 위치가 전남 고흥이었다는 이유로 우리 일 마냥 기뻐할 노릇은 아니다.

나로호 발사는 알려진 것만 해도 무려 5,000억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 거대 사업이다. 위성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가 페어링(위성 덮개) 분리 실패라고 하는데, 발사체 실패에서 잦은 이유라고 한다. 2차 발사도 남아있으니,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한다.

프로야구 드래프트 의미 밖에?

▲ 25일 오후 5시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가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오르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어렸을 적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한 번쯤 우주를 꿈꿔봤고, 얼마 안에 우주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는 수준의 소박한 거짓말(!)들에 현혹됐던 입장에서 내가 나로호를 응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나로호 발사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앞서 말한, 야구 드래프트의 효과 정도가 있겠다 싶은 정도이다. 나로호 발사를 지켜 본 아이들이 거기에 꿈과 욕망을 투영해 도전하고, 몇 년 후에 실제로 그 분야에 많은 인재와 인력이 활성화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 밖에 나로호는 모든 것이 미지수, 전체적인 전개 방식과 구조는 국가적 차원의 스펙터클 보여주기로 밖에 보여 지지 않는다.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에서 5,000억이 무슨 큰돈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급식비가 깍이고, 차상위 계층에 지급되는 복지 예산이 삭감되는 국가 재정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그 5,000억의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것은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상당수의 금액이 러시아로 건너갔을 터인데, 과연 러시아로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 기술을 이양 받고, 구체적인 협약 내용은 무엇인지도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다.

혹시, '반도체 수입해서 일일이 분해하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배웠다'하는 수준의, 한 겨울 잔디가 없어 운동장에 보리 심어 놓고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다는 무용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러시아가 아무리 예전의 위용이 아니라고 한들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를 진행의 대가로 5,000억에 기술을 넘기진 않을 것인데, 행여나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을 전 국민 앞에서 연출해주는 대가로 세금이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부당천부당 한 말이지만 혹시나 일말이라도 그렇다면 정말 큰일, 돌이킬 수 없는 쇼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나로호 발사가 한반도 주변에 미칠 영향도 걱정이다. 지난 번 북한의 로켓 발사에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국내 언론만 하더라도 북한이 또 제 버릇을 못 버리고 벼랑 끝 도박을 시작했다고 몰아 붙였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는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군사용 로켓이나 나로호나 발사의 원리는 같다. 나로호에 무기를 실으면 대포동 1호도 될 수 있고, 노동 2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로호 발사는 그 자체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문제일 수도 있건만, 국내 언론 어디를 보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커녕 암시조차 없다. 모든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전은 한 끝만 잘못 디디면 군사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나로호 발사 실패, 성찰의 기회로

황우석 사태 때 여실히 드러났듯 과학이 정치를 위해 복무하는 것 또한 여전한 현실이라는 점도 못내 걸린다. 나로호 역시 충분히 그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예방되고 해결될 수 있지만, 언론은 이번에도 역시나 발사체가 내뿜는 화염의 스펙터클에 취해 아무런 비판적 인식을 작동시켜내지 못하고 있다. 황우석의 생명공학이 삶의 편의성을 증진한다는 부분적 역할을 뛰어넘어 스스로 전능한 신화가 되려했을 때, 언론은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방조하거나 혹은 일조했었다. 그 이후의 대가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혹독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비슷한 논리 구조에 서있는 나로호 문제에 있어 언론은 별로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로호는 일단 실패했다. 정부는 호들갑을 떨며 점검에 나섰다. 성찰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로호, 국가, 시장 그리고 미디어로 이어지는 관계가 어떻게 배열되어 있고, 서로간의 비판과 견제는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우주로의 도전이 한바탕 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상황을 얼추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전문가들을 끌어내야 한다. 나로호 실패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발사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술과 그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논증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설령 나로호가 2차 발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한 세대의 꿈과 욕망이 보다 우주 집중적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정황적 믿음 밖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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