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꺾인 현실의 날개였지만, 무등 야구장의 ‘해태 타이거즈’는 날아오르는 희열이었고 모든 희망의 상징이었다.”(<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127쪽)

이제 김대중이란 이름을 거론하며 그가 민주화투쟁을 하며 겪었던 고난과 고통을 일일이 적어 넣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김대중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거목이 되었다. 아니, 사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미처 인정하지 못했던 탓이다.

김대중과 관련한 역사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시 쓰여질 것이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에피소드들부터 그에게 젖줄을 댔던 다양한 활동들까지. 여기 김대중에 대한 가장 독특한 서술 중 하나를 소개한다. 올해 초에 발간된 책,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상, 김은식 지음)이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을 매개로 하여 8,90년대의 프로야구와 당시 시대상황을 솜씨좋게 버무려 놓은 책이다.

참으로 얄궂게도 그의 서거이후 기아 타이거즈가 프로야구 단독선두에 올랐다. 야구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왜 얄궂은지 아리송할 수도 있겠다. 그 자신, 스스로는 한 번도 야구를 즐기지 않았다는 김대중과 해태 타이거즈와의 기묘한 인연 덕분이다.

호남이라는 공통분모의 DJ와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가 어떤 팀인가? 프로야구 창단 이후 가장 빈약한 재정지원에 허덕이면서도 1983년부터 1997년 사이의 15년 동안 아홉 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8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아홉 번 모두 우승했던 팀. 여섯 명의 정규시즌 MVP와 46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고, 공수 주요부문 타이틀 수상자만 46명을 배출했던 팀이다. 한 마디로 어떤 기준을 들이대든 역대 최강의 팀이었단 얘기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 한 시대를 교차하는 아이콘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은 호남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호남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저주받은 이름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시절 광주출신의 선배와 함께 자취를 한단 얘기를 들으시고는 “왜 하필 전라도 사람이냐”며 마뜩한 심정을 드러내셨다. 어머니에 따르면 “전라도 사람은 겉에선 간이라도 빼줄 듯 잘해주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친다”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그 선배에게 뒤통수 맞은 일이 있던 것도 같지만, 그리 따지자면 조선팔도 모든 이들에게 뒤통수 한번 맞아보지 않은 일이 있을까도 싶다. 요컨대, 이치에 닿지 않는 편견 아니겠나.

그러나 편견은 어느 한 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오랜 공작에 의해 조작되고 탄생된 질긴 굴레였다. 호남사람들은 사회의 곳곳에서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받았고, 호남은 정치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된 설움의 땅이 됐다. 이 설움의 중심에 김대중이 있었다. 납치, 암살기도, 투옥, 가택연금 등 모진 탄압을 견디며 그럼에도 꿋꿋하게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그는 호남의 상징이었다.

DJ 당선되자 해태 타이거즈는 몰락?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해태 타이거즈는 호남 사람들의 이런 한을 풀어주듯 신들린 경기를 펼쳐나갔다. 80년 광주 이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해태의 활약은 호남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해방구였다. 해태 역시 호남의 상징이었다.

“그들에게 무등 경기장은 유일하게 수천명이 모여앉아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볼 수 있는 곳이었고, 그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서러운 패배와 차별의 굴레를 벗고 승리의 희열과 부러움의 눈길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래서 해태 타이거즈가 이기고 이기고 또 이겨 최강의 자리에 오를 때마다 무등 경기장의 관중석에서는 시원한 함성이 터졌고,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7쪽)

김대중이 김대중 개인만의 이름이 아니었듯, 해태 타이거즈는 단순히 하나의 야구팀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호남의 기대와 설움과 눈물과 아픔과 희망이 모두 이 두 상징 위에 얹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끝끝내 오지않을 것만 같았던 날이 도래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해태 타이거즈는 이때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다. 김대중이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가 몰락했다.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의 희망이었던 김대중이 휘두른 권력에, 그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제일 먼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우상이었던 해태 타이거즈 역시,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213쪽, 217쪽)

희비의 쌍곡선

해태는 IMF의 와중에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선수들을 타구단에 팔아넘기며 연명하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선동렬과 이종범은 일본으로, 임창용과 이강철은 삼성으로, 홍현우는 엘지로 각각 팔려나갔다. “아,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김응룡 감독의 말은 이 시절 해태의 곤궁한 상황을 대변해 준다.

물론, 김대중의 당선과 해태의 몰락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는 없다. 다만 시대의 굴곡을 함께 버텨낸 두 개의 상징이 희비쌍곡선을 그려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기묘할 뿐이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의 아이러니를 잡아챈 통찰이 빼어나지만 이 책이 정치서적은 아니다. 오히려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은 8,90년대 옛날 야구를 즐겨봤던 이라면 따뜻한 공감과 향수에 젖을만한 이야기들이다. 가히 야구를 통해 본 세상읽기라 할 만한 성취다. 서거정국에 마음 둘 곳이 없는 이들, 프로야구의 스펙타클만으론 왠지 헛헛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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