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최대 승부처가 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최순실 씨 모녀에 삼성이 자금을 지원한 본질을 뇌물공여로 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대가성 자금 지원 정황과 함께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적 공동체라는 점이 입증되면 박근혜 대통령에 뇌물죄를 적용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해진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박영수 특검의 이런 행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놓고 있다. ‘권언유착’이란 네 글자를 또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중앙일보 16일 지면에 <국정 농단 수사, 이재용 영장 청구가 본류인가>란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14일 <이재용이라고 봐줘서도, 억지로 옭아매서도 안 돼>란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동아일보 역시 14일 지면에 <권력이 강요한 ‘뇌물’, 구속해야 할 사안인가>란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업들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 역시 사실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은 특검의 과도한 권한행사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피의자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뒤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의 이런 주장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인다. 아무리 특검이라도 법이 정한 한도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삼성의 경우 굳이 합병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요청하는데 돈을 내지 않을 방법이 있었겠느냐는 반문을 내놓고 있다. 일리가 없는 얘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이런 주장을 사설로 내놓는 시점을 따져보면 문제가 된다는 판단이다. 특검이 원한다고 해서 이재용 부회장이 바로 구속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 구속영장은 법원이 그 필요성을 인정할 때 발부된다. 영장실질심사라고도 부르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라는 절차가 있는 건 그래서다.

구속영장은 통상 피의자의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을 때 발부된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도주의 우려는 없을 수 있겠으나 증거인멸의 경우는 다르다. 15일 SBS의 보도를 보면 그렇다. SBS는 2015년 11월 말 박원오 승마협회 고문이 최순실 씨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런 소문은 나자마자 싹을 잘라야 한다”는 삼성 측의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또 SBS는 지난해 2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만든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해달라는 내용이 적힌 문서를 직접 받은 걸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등에서 대통령이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대통령으로부터 문서를 직접 받았다면 그간의 주장은 자신의 책임을 임원들에게 떠넘기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종합해보면, 결국 최종의사결정권자이자 증거인멸의 수혜자인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해야 특검이 삼성의 최순실 씨 일가에 대한 금전지원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이미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세웠으면서도 명분을 쌓기 위해 망설이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할 경우에 대한 경제적 파급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했다고 주장할 거라는 얘기다.

따라서 보수언론이 특검의 수사내용과 앞으로 예정된 법원의 판단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일종의 ‘원칙론’을 언급하는 건 일종의 ‘여론조성’ 용도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이재용 부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을 만들어 특검의 수사를 흔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무리한 인식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3일 법원에서 열린 3차 공판에서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소유의 휴대폰에서 복원된 문자 메시지 등을 공개했다. 이 문자메시지들은 SK 관계자들이 총수 사면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 대부분인 가운데, “조선일보 수뇌부와 만났는데 ‘경제활성화 등을 위해 최태원 회장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톤의 사설을 게재해 주기로 했다. 한 번 살펴봐 달라”는 내용 역시 포함된 걸로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실제 SK 측과 교감을 갖고 기업 총수들의 사면을 요구하는 사설을 썼는지에 대해선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과 각종 유착관계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판국이니 조선일보가 아무리 ‘충심’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사설을 쓴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해도 납득이 될 리가 만무하다.

보도가 사실 그 자체에 의한 게 아니라 사건의 너머에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순간, 언론은 고유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실제로 언론은 수많은 대중들로부터 이미 불신의 대상이 돼있다. 최근 TV조선이 국정농단의 또 하나의 축인 정윤회 씨가 모 방송사 사장을 독대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한 논란은 대중들의 이런 믿음을 강화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미디어오늘 등은 정윤회 씨와 독대했다는 인물을 안광한 MBC 사장으로 지목하여 보도하였는데, MBC의 입장은 이 보도가 허위사실이며 법적대응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MBC는 이러한 주장을 자사의 간판 보도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를 통해 리포트의 한 꼭지로서 보도했다. 이에 대해 MBC 기자협회는 <뉴스데스크>의 리포트가 ‘의혹제기와 해명’의 형태가 아니라 안광한 사장 개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MBC뉴스는 안광한 사장 개인 소유물이 돼버렸다”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MBC가 권력에 당당한 보도를 해왔다고 믿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논란이 이런 식으로 번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지난해 12월 자신과 조선일보 기자와의 SNS 대화 내용 등이 MBC를 통해 보도된 것에 대해 “어떻게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MBC의 이 보도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관의 내사를 무력화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이런 판국이니 “권언유착은 없다”는 항변이 대중들의 귀에 어떻게 들리겠는가. 보수언론과 일부 공영방송이 자신들의 딛고 있는 존재론적 근거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는 인식을 급히 갖지 않으면 파국이 닥쳐올 가능성은 커져만 갈 것이다. ‘이제라도 정도를 걷자’는 제안마저도 허무하고 식상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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