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세계랭킹 104위)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 남자 테니스(ATP)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무대에 나선다.

올해 정현의 호주 오픈 본선 출전은 다소 행운이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까지 본선 대기 1번 순위였던 정현은 본선 진출자 가운데 케빈 앤더슨(세계랭킹 68위·남아프리카공화국)이 부상을 이유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정현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호주오픈 본선 무대에서 기량을 펼치게 됐다. 호주오픈 본선은 오늘 16일부터 호주 멜버른의 멜버른파크에서 개막한다.

지난 13일 발표된 대진표에 따르면 정현은 본선 1회전에서 세계랭킹 78위에 올라 있는 렌조 올리보(아르헨티나)와 맞붙는다.

정현보다 4살 많은 올리보는 메이저대회 본선 진출 경험이 지난해 호주오픈이 전부다. 메이저 대회 경력만 놓고 보면 정현이 앞서는 셈이다. 하지만 작년 호주 오픈 출전 당시 올리보는 예선을 거처 본선 무대에 올라 2회전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작년 대회 성적으로는 정현에 앞선다. 정현과는 이번이 첫 맞대결.

정현. [AFP=연합뉴스]

정현의 입장에서 보면 작년 대회에서 1회전 탈락이란 결과는 그리 억울할 것도 없는 결과다. 당시 상대가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던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였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랭킹 52위에 올라 있던 정현은 조코비치를 맞아 비록 세트스코어 0-3(3-6, 2-6, 4-6)의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내용으로는 결코 주눅 들지 않았고, 완전히 밀리는 경기를 하지도 않았다. 상대 조코비치는 물론 경기를 지켜본 전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경기 내용이었다.

3세트 밖에 치르지 않은 경기였고, 타이 브레이크도 없었던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시간이 1시간 55분이나 소요됐다는 점은 그만큼 매 세트 접전에 가까운 경기가 펼쳐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기 직후 조코비치는 정현에 대해 “정현은 향후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정현의 플레이에 대해 “키가 큰데도 매우 잘 움직였다. 공수 모두 잘했다. 베이스라인 플레이가 매우 훌륭하고 빈틈없었다. 특히 백핸드가 좋았다. 백핸드는 좌우측에서 모두 매우 강하고 낮은 동시에 빈틈 없었다”고 평가했다. 조코비치가 지적한 부분은 정현의 ‘경험’ 정도였다.

노바크 조코비치. [AP=연합뉴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ATP 투어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이형택(이형택테니스아카데미재단 이사장) 씨는 당시 정현의 경기에 대해 "정현이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스트로크 승부에서는 대등했고, 과감한 공격도 좋았다. 서브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결국 서브에서 밀리면서 범실이 나왔고, 여기에 조코비치의 노련한 경기 운영이 더해지면서 정현이 패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세계랭킹 1위를 상대로 자신감 있게 경기를 치른 것 자체가 대단하다. 정현이 이번 패배를 거울삼아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정현의 강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멘탈'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현은 호주오픈 이후 부상에 발목이 잡히며 부진한 시즌을 보내야 했다.

투어 대회에 출전했지만 1, 2회전에 탈락하기 일쑤였다. 작년 5월 프랑스오픈 1회전(vs 캉탱 알리스, 0-3 패)을 치른 직후 복부에 통증을 느꼈다.

부상이 악화되기 전에 귀국해 회복에 전념해야겠다고 판단한 정현은 이후 9월 초까지 4개월간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도 포기했다. 온전치 않은 몸상태로 부진한 경기를 펼쳤을 때의 실망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완벽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어떤 대회에도 출전하고 싶지 않았다.

정현. [EPA=연합뉴스]

그래서 정현은 올림픽 출전 대신 일본의 유명 코치를 초빙, 유연성과 근력을 향상시키는 트레이닝 위주의 훈련을 소화하는 원 포인트 레슨을 받기도 했다.

51위까지 올라갔던 세계랭킹이 145위까지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정상 컨디션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현이 복귀한 지난해 9월 이후 결과를 놓고 보면 올림픽을 포함한 4개월간의 공백을 택한 정현의 판단은 옳았다.

정현은 복귀전이었던 난창챌린저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챌린저에서 2차례 우승(가오슝, 효고 노아)했고 준결승에도 2차례(닝보, 쑤저우) 올라 랭킹 포인트를 착실히 쌓았다.

그리고 정현은 새해 첫 날인 지난 1일 인도에서 열린 ATP투어 250시리즈 첸나이오픈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유르겐 멜처(오스트리아, 306위)를 1시간 39분 만에 6-0 7-6(4)로 물리치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멜처는 정현과 상대할 당시 세계랭킹이 306위였지만 한때 세계랭킹 8위에까지 올랐던 톱랭커였다. 투어에서 통산 5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 프랑스오픈에서는 4강에 올랐다. 또 2011년 4월에는 자신의 최고랭킹 8위를 기록했다.

이런 선수를 완파하고 작년 프랑스오픈 이후 7개월 만에 투어 이상급 대회 본선에 진출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리고 다소간의 행운이 따른 끝에 정현은 시즌 첫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본선 무대에 서게 됐다.

정현의 1회전 상대 올리보는 작년 1회전 상대(조코비치)에 비한다면 한참 상대하기 좋은 선수라고 할 수 있지만, 최근 기세를 보면 결코 이기기 쉽지 않은 상대다.

렌조 올리보. [EPA=연합뉴스]

2009년 프로에 데뷔한 올리보는 작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호주 오픈 2회전 진출을 시작으로 ATP투어 250시리즈 키토오픈(에콰도르)에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 8강에 진출하며 자신의 최고 투어 성적을 기록했고, 6월에 열린 ATP투어 500시리즈 함부르크 오픈(독일)에서는 자신보다 상위 랭커들을 연파하고 8강에 진출했다.

또 9월과 10월 두 차례 챌린저 대회(산토스챌린저, 부에노스아이레스챌린저) 우승으로 세계 87위에 올라 생애 처음으로 톱100 진입에 성공했고, 결국 세계 83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주에 끝난 ATP투어 250시리즈 첸나이오픈에서 16강에 진출한 올리보는 지난 9일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자신의 최고 랭킹인 78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기세로만 놓고 보면 올리보가 상당히 강해 보이지만 정현이 호주 오픈과 같은 하드 코트 대회에 상대적으로 강한 반면, 올리보는 하드 코트에서 상대적으로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정현이 올리보를 잡으면 2회전에서는 그리고르 디미트로프(15위·불가리아)-크리스토퍼 오코넬(238위·호주) 경기 승자와 맞붙는다. 랭킹 면으로 보면 디미트로프와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현이 작년 호주 오픈과 맺은 의미 있는 인연을 올해도 이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호주 오픈을 발판으로 재도약의 희망을 밝힐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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