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암과 싸우고 있었고, 누군가는 다른 생업을 찾아냈고. 결국 아직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2일 JTBC <뉴스룸>에서, 이날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하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소개한 손석희 앵커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였다.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고자 했겠지만, 지난 2008년 YTN 파업 당시 한 언론인이 “그렇게 방송 잘하자고 제대로 뉴스해보자고 했던 게 겨우 이런 겁니까? 제 젊음을 다 바쳤습니다”라고 울부짖는 영상을 바라보는 손석희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워치독·랩독·가드독…"나는 길들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영화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낙하산 사장이 YTN, MBC 사장에 취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낙하산 사장에 반발하여 저항한 언론인들이 대규모로 해고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고된 지 9년 가까이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언론인들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권력,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워치독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 나라는 상식적인 나라가 되지 못했고, 그 결과 우리는 <7년>이라는 영화를 만나게 된다.

작년에 열린 17회 전주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작은 단연 <자백>과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었다. 지난 10월에 개봉하여 14만 명 관객을 기록한 <자백>은 MBC에서 해고된 최승호 전 PD수첩 PD(현 뉴스타파 앵커)가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밀착 취재하며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고,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YTN, MBC에서 해고된 언론인들의 투쟁기를 담았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연출한 김진혁 감독도 한때 EBS에서 <지식채널e>, <다큐프라임>을 만든 PD였지만, 그가 제작한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반민특위 편)’>이 사측으로부터 제작 중단 지시를 통보받은 이후 EBS를 퇴사한 아픈 기억이 있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스틸 이미지

언론사에서 쫓겨난 이들 PD, 기자들이 언론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매체는 영화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이 대안으로 생각한 영화계도 박근혜 정부 이후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여러 언론사에 낙하산 사장을 꽃아 넣으며, 언론을 망가뜨리는 데 이바지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암암리에 관리하였다고 하나, ‘블랙리스트’까지 만들며 예술가들을 검열한 박근혜 정부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정부에 반하는 문화예술인들을 적으로 몰아붙였던 박근혜 정부가 유독 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은, 대중문화예술로서 영화가 가진 강력한 힘에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할, 아버지 박정희 시절 영화는 철저히 대중 영합적이거나 조국근대화, 반공 이념에 충실한 영상만 존재했다. 당연히 정권에 비판적인 그 어떤 요소도 허락되지 않았고 <다이빙벨>, <자백>, <7년-그들이 없는 언론>와 같은 사회고발영화는 아예 제작조차 생각할 수 없는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에 이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한 정권 시절에도 영화는 호스티스 에로물, 코미디로 점철된 우민화 수단에 그치게 된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세상은 조금씩 달라져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철거민(<상계동 올림픽>, 노동자파업(<파업전야>) 등 사회고발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려 철저히 흥행을 위해 제작되는 상업영화에도 사회비판적인 소재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이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언론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영화가 조금이나마 해결해주는 양상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2년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박근혜 정부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문제 삼았고, 아예 대놓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영화화 했던 <변호인>(2013)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선전포고한 것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BIFF) <다이빙벨> 상영부터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소식이 발표된 이후 서병수 부산시장은 BIFF측에 <다이빙벨> 상영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단호히 거절하고 예정대로 상영을 진행한다. 세계적인 영화제로 명성을 쌓아가던 BIFF의 수난시대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영화제가 시작된 1996년부터 20년간 성공적으로 BIFF를 이끌어오던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강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야했고, BIFF 예산 또한 2014년 기준 14억 원에서 이듬해 8억 원으로 대폭 삭감된다.

<다이빙벨> 사태 후폭풍은 <다이빙벨>을 배급한 ‘시네마달’에게도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2015년 <다이빙벨> 개봉 이후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사업에서 연이어 탈락했다는 시네마달은 최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내사를 당했다는 정황이 알려짐과 동시에,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영화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시네마달은 <다이빙벨> 배급 이후, 예술영화 전문 배급사 엣나인 필름과 함께 <자백>을 공동 배급하기도 했다. 엣나인 필름은 2012년 고 김근태 의원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받은 사실을 영화화한 <남영동 1985>의 배급을 맡은 이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바 있다.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다가 해고된 해직 언론인들이 우회적으로 선택한 영화판도, 그들을 몰아냈던 언론사만큼이나 냉혹한 현실을 지나고 있다. <다이빙벨> 사태에서 보았듯이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영화 상영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지만,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기업계열 멀티플렉스가 알아서 정권 비판 영화 상영을 배제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고 무효 소송에서 승소를 받았음에도 복직이 요원했던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속 해직 언론인들처럼, 전국에 있는 수많은 멀티플렉스는 저조한 예매율과 관객 선호도가 낮다는 이유로 사허;고발 영화의 상영을 망설이고 거절한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스틸 이미지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2008년 구본홍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YTN 노조조합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공정방송 사수와 복직을 향한 언론인들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제목처럼 7년간의 이야기만 보여주고 있지만, 그 이후 그들이 끝내 지키지 못한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를 방조한 공범으로 추락하게 된다.

무너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언론 개혁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한 요즘, 지난 2008년 YTN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이후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가 다시 YTN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드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MBC에서 해고된 최승호, 이용마, 박성호, 박성제 등 해직 언론인들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몸살을 앓았던 영화계도 정상화되었으면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길들지 않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꿈꾸는 세계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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