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다. 분명 하루 종일 기다린 방송이 나와야 할 시간이었는데, 도무지 분위기가 아니었다. TV를 틀면 온통 우는 사람들뿐이었다. 검은 옷, 흰 옷을 입은 사람들만 우는 게 아니라 TV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우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물끄러미 그 도저한 울음바다를 지켜보다 TV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네꼬마들이 모두 몰려나온 것 같았다. 다들 분개한 표정이었다. 79년 10월의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TV는 대중의 아편’이라고 생각한다. 흥분하지 마시라. 맑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종교가 인민을 타락시킨다는 뜻이 아니었다. 맑스 시대에 아편은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였으며, 당연히 합법이었다.

TV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특히 어느새 편성에서 육중한 비중을 자랑하게 된 예능은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만점의 진통제다. 말하자면 예능은 대중의 아스피린이랄까? 어찌보면 무한도전이나 1박2일 등의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이제 밥 먹고 피우는 담배 한 개비나 커피 한잔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습관적인 일이 되어버린 듯싶다.

분개했던 79년 10월의 기억

듣자하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기간에 방송3사는 코미디프로와 가요프로그램을 편성에서 제외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몇몇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논의 중이고 일부 프로그램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도 나온다. 아무래도 이번 경우는 ‘정치적 타살’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5월의 충격에 비하자면 자연사라는 자연스런 외양을 가지고 있어 방송사도, 시청자도 조금 넉넉해진 감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이런 논란이 계속된다는 건 좀 우습다 못해 서운하다. 이번 논란을 접하며 79년을 떠올린 것은 좀 부적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정희와 김대중이 아무리 ‘라이벌’이었다고는 하지만, 둘을 비교선상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해 할 만한 이들이 있을테니. 그러면 다른 예를 들어보자.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어떤가? 영 엉뚱해 보이지만 채널선택권이라는 문제에서 이들은 동일한 설정이 아니던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열광하는 것과 추모정국의 엄숙함을 유지하는 것을 수평비교하는 것이 부당하다 해도 다른 선택을 원하는 개인들의 의사를 그렇게 쉽게 무시해버릴 만한 ‘현실적인 근거’는 합리적인가?

우스운 것은 아직껏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비난 사이를 저울질하고 있을 방송관계자들의 표정이 떠올라서고, 서운한 것은 아직까지도 국가라는 이름 앞에서 개인을 사고하는 단계로 건너오지 못한 이 사회의 오래된 풍경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일주일 내내 닥치고 추모, 라는 식의 전체주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고방식은 좀 곤란하지 않은가 말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국상’, 에 ‘군사부일체’까지 들먹이시는데, 애석하게도 19세기로 돌아갈 방법은 현 과학기술 수준에선 없으니 사극에 심취하실 것을 권한다. 단, 현실과 혼동하지만 말아주시면 감사하겠다.

▲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캡처.
<무한도전>은 살아남고 <뮤직뱅크>는 결방, 기준은?

한 방송 관계자는 "가무와 웃음이 핵심이 된 프로그램과 달리 일상 속의 프로그램들은 그대로 방송되며 조용히 애도의 뜻을 밝히는 것이 맞다고 봤다"며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애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단다. 이분이 뭘 모르시는데 사실, 국민들의 일상은 예능과 떼놓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현실 아닌가. 기준도 아리송하다. <무한도전>과 <패밀리가 떴다>는 살아남았고, <뮤직뱅크>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결방을 면치 못했다. 평소에도 매번 각종 논란에 시달리는 ‘막장 드라마’는 추모분위기에 딱딱 맞는 콘텐츠라서 별 얘기들을 안하시는겐가?

그러나 ‘현실’에 더 솔직해지자. 시청자들에게는 케이블이 있다. 이미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 관련 뉴스가 점차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고,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도 재방송이 다수여서, 많은 시청자들이 지상파에서 케이블방송으로 채널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그렇다. 케이블에는 누구도 그런 팍팍한 기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상파는 공공성에 대한 요구정도가 다른 것 아니냐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 공공성 요구가 미디어법이나 방송장악 논란 등 제대로 된 맥락에서도 일관된 수준으로 작동한다면 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두 가지만 밝혀두자. 우선, 집에서 TV를 치운지 어느 새 일 년이 넘었다. 나, 예능에 환장한 놈 아니다. 다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슨상님’으로 추앙하든 ‘빨갱이 괴수’로 성토하든 한국정치와 현대사에 깊이 새겨진 그의 영향력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거인이다. 그는 한때 내 ‘영웅’이었으며, 여전히 보수정치인들 가운데는 우뚝하다. 남북관계, 민주주의, 평화, 인권 등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십분 인정하지만, 박노자의 “결국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으로 축적된 김대중 선생의 ‘정치적 자본’(권위)은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고착, 착근, 발전에 쓰이게 된 꼴”이라는 평가에도 동의한다.(역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혀두자면, 박노자는 김대중의 업적에 대해 서술하고 균형을 위한 객관적 평가로 이 문장을 기술했다.) 한 마디로, 나 역시 나름의 방식대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추모한단 얘기다.

당신들의 이중 잣대

생각하면,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예능 결방 사이에 무슨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겠나. 생각을 밀고 나가니 이런 사태는 전통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원래 우리 장례문화는 떠들썩하다. 밤샘 고스톱을 치면서라도 장례식장을 지킨다.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면서 망자를 떠올리고 유가족을 위로한다. 장례식장이 '휑덩그러니' 비어있는 것을 되레 금기시한다. 제아무리 악상일지라도 조문객들이 죄인처럼 앉아있는 것을 꺼리는 법인데, 애먼 국민들을 죄인으로 만들 까닭이 없다. 아, 갑자기 79년 ‘동료’들의 침통한 표정이 떠오른다.

또 생각하면 재밌는 일이다. 최근에는 예능에 현실비판 기능까지 요구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 이 까다로운 시청자들이라니. 그러나 동시에 예능을 떳떳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역시 길티플레저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나보다. 추모기간의 예능 결방 요구와 고민, 편성국의 눈치작전과 고뇌에 찬 결정 모두 예능에 대한 상반된 시선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예능이 부끄러운가? 나는 예능을 부끄럽게 여기는 당신의 그 이중 잣대가 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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