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가 회사에 끼친 손해 1500억원은 곧 KBS의 주인인 국민에게 끼친 손해이고 정씨의 행위는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계속 놓아둘 수 있겠는가."

이는 2008년 7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KBS 정연주씨, 사장 더 하려 국민에게 1500억 손해 끼쳤나>의 한 부분이다. 정 전 사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당시, 조선일보는 검찰의 '배임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며 정 전 사장의 조정안 수락을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표현했다. 노골적으로 정 전 사장의 퇴진을 압박한 조선일보는 호칭도 '사장'이 아니라 '씨'를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KBS PD협회 등 정씨의 친위세력과 일부 네티즌들은 정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라며 KBS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였다. 정씨는 그 뒤에 웅크리고 앉아 어떻게든 법망을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정 전 사장을 폄하하기도 했다.

▲ 2008년 7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사설 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2008년 7월 8일 6면 <'KBS 적자' 사퇴 압력 피하려 정연주 사장, 국세청과 합의?>에서 KBS정책기획센터가 △2003년 12월 세무소송을 위해 전사적인 지원체계 마련을 지시하고 △2004년 4월 세무소송의 필요성 및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을 강조한 내용이 포함된 2005년 10월 19일자 'KBS 부울(부산·울산) 노보'를 토대로 "배임 혐의로 고발된 정연주 KBS 사장이 2003년~2004년까지만 해도 소송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강경한 입장에 있던 경영진이 이듬해 갑자기 소송을 취하했다. 순수한 법리적인 판단보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한 내부 구성원의 말을 전하며 검찰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일보는 2008년 8월 18일 8면 <노 전 대통령, 황당한 '정연주 두둔'>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정 전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정 전 사장이 배임을 했다면 부당하게 이득을 본 사람은 국민이고, KBS와 정부간 소송에서 합의를 해 KBS가 손해를 봤다면 덕을 본 것은 정부다. 정부가 덕을 보고 국민이 덕을 봤는데 정부에서 그걸 문제삼고 있다. 감사원이 나와서 언론의 군기를 잡는 시대쯤 되면 그것은 퇴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해괴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법률가 출신 답지 않은 사고방식"이라는 한 중견 변호사의 발언을 전달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2008년 8월 14일 오피니언면 <기자의 눈-"정연주 전 사장 혈세낭비 사죄해야">에서 "세금 환급 포기는 명백한 배임행위다" "정 전 사장은 법앞에 무릎 꿇기 전에 국민 세금을 함부로 쓴 죄에 대해 국민 앞에 먼저 사죄해야 한다"는 경수근 변호사(검찰측 증인)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연주 전 KBS사장 해임의 주요 근거가 됐던 '업무상 배임'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조선, 동아는 19일자 지면에서 어떻게 보도했을까? 각각 10면, 16면에서 법원 판결내용을 간단하게 실었을 뿐이다.

이중 조선일보는 판결문 가운데 중요 쟁점인 상급심에서의 승소가능성 등을 배제한 채 "법원이 조정을 권고하고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하는 것은 사법 작용으로, 이에 대한 배임 책임을 물으면 자칫 재판부에도 배임의 방조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는 내용만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연우 민언련 공동대표는 "최소한의 합리적 상식과 판단이 있었다면 기소 자체가 무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취재 경험이 있거나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면 정치적 기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의도적으로 악의적 보도를 했다"며 "공격대상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원칙 등 기본적인 보도원칙 조차도 포기한 '아니면 말고식' 보도"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언론이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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