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또 다른 태블릿PC를 제출하면서 특검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특검팀은 이 태블릿PC를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것으로 확인했으며 독일에서의 법인 설립이나 삼성으로부터 지원 등과 관련한 이메일 기록 등이 들어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즉, 새로 확보된 태블릿PC의 자료들을 통해 삼성의 뇌물 대가성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최순실 씨의 조카인 장시호 씨가 태블릿PC를 특검 측에 제공한 것은 아들 문제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9세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됐고, 특검 수사에 협력함으로써 형량을 줄이는 등의 생존(?)을 모색하게 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태블릿PC 추가 제출, 뇌물죄 적용 가능성 커져

동아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장시호 씨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매우 분개하였다고 한다. 장시호 씨의 모친인 최순득 씨가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딸을 보호해달라며 거의 읍소하듯 한 탓에 최순실 씨가 자신에게 제기된 일부 혐의를 인정한 사실이 있는데도 일종의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장시호 씨의 태블릿PC 제출이 이런 맥락에 있다면 앞으로 이 사건 관련 다른 증인들이 추가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다. 각자도생의 국면으로 가는 것이다.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4일 오후 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어쨌든 장시호 씨의 태블릿PC 제출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특검 수사가 상당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3자뇌물죄가 아닌 뇌물수뢰죄를 직접적으로 적용할 경우 직무와 관련된 금품이라는 점만 입증되어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특검팀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경제적 공동체라는 점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 역시 이 혐의의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에 이런 혐의를 적용할 경우 ‘뇌물 공여자’가 되는 삼성 입장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적인 처벌을 받는 가능성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최순실 씨에게 금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경우 횡령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특검 수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이 확정되면 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끼친다. 국정농단 혐의 등에 대해 헌법 위반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뇌물 수수 혐의는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3자뇌물죄 적용을 예상하고 한사코 검찰 수사를 거부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뇌물 수수자와 공여자를 모두 수사해야 하는 혐의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 탄핵 인용 근거로 작용할 듯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의 급격한 진전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결국 탄핵 인용 결정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박영수 특검팀은 10일 브리핑을 통해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이른바 ‘4인방’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위증 혐의를 적용하는 것인데도 구속영장 청구서에 헌법위반 행위라는 설명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은 이에 대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탄핵 인용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10일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등은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지시 및 결정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헌법에 반하는 방식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명확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의 이행을 거부한 공무원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보게 됐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기에도 연루됐을 경우 헌법 7조와 헌법 25조가 정하고 있는 직업공무원제도와 공무담임권을 침해한 걸로 볼 수 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기 때문에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은 확대되고 있다. SBS 등은 10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화계 뿐만이 아닌 모든 영역에 걸쳐 블랙리스트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구체적 사례가 계속 쌓여가고 있는 셈이다.

탄핵심판 속도 내려는 헌법재판소와 박근혜 대통령의 ‘지연전술’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에 성실하게 응해 모든 사실을 규명하고 헌법재판소가 빠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게 국익을 위한 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에 나서는 것만이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지만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 측은 10일 3차 변론기일에도 불성실한 대응으로 일관해 국민적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외교안보적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적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태도를 좋게 평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3차 공개변론을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치졸한 대응을 이어가는 것은 헌법재판소 역시 빠른 결론을 내리는 방향으로 심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수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탄핵 심판의 주심을 맡은 강일원 재판관 등은 가능한 빠른 결론을 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의 절차는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한다’는 대목에 대해 소극적 해석을 하고 있는 것도 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부 언론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조기 인용을 의도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연 전술’ 때문에 불가피하게 절차가 늦어질 경우 정부와 국회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연임’에 합의할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해 자신의 임기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1월 31일 퇴임’을 분명히 했으나 6년 추가 연임은 국회의 결정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가능성과는 별개로 이런 상황은 또 다른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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