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택으로 시작된 문화체육부의 부정과 비리는 결국 블랙리스트까지 도달했다. 설로만 떠돌던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거창한 이유보다도 대단히 영세한 예술인들의 밥그릇을 쥐고 협박과 공갈을 자행했다는 그 저열한 방식에 더욱 분노하게 된다.

가끔 보도되는 것처럼 순수예술분야는 아직도 대단히 열악하다. 개인적인 장르는 그나마 혼자서 고생을 각오하고, 감내하면 어쨌든 될 수도 있겠지만 단체 부문은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공연예술의 경우는 연습부터 공연장 대관까지 시간과 돈이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하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7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는 것은 단지 재정적 지원을 끊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한 경우에는 공연장 대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밖에도 블랙리스트의 활용(?)은 아주 다양하게 존재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블랙리스트의 위력과 공포가 잘 실감나지 않겠지만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데스노트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의한 문화예술농단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단지 블랙리스트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 중에 하나의 녹취가 등장한다. 지원심사위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과 공무원과의 대화였다.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뒤집으려는 문화부 직원에게 반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그 사람은 용감하고 정의를 잊지 않은 소금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그 혼자였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 4년, 블랙리스트가 하루아침에 1만 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안에 따라 추가되는 과정을 거쳤다. 블랙리스트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심사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하고, 심사는 민간인이 한다. 당연히 블랙리스트의 비밀은 심사위원들의 침묵 혹은 동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어쨌든 블랙리스트를 따르지 않고 모두가 저항했다면 블랙리스트는 단지 리스트에 그치거나 영향력이 최소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비밀이 지켜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것이 이번에야 드러났다는 것은 바로 이 심사위원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체부가 아무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지원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들이 그에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가 데스노트로 위력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심사위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문화예술 지원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문체부 산하에는 많은 기관들이 존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악원, 예술의 전당 등 수도 없이 많다. 이들 기관장들은 소위 개방형 임명직들이다. 이들 역시 민간인 신분의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심사를 한다. 작게는 수백만 원에 지나지 않는 문화예술지원금에도 작동된 블랙리스트와 그에 순응한 심사위원의 메커니즘이 거기에는 적용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이 문제는 참여정부도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래서 당시에 코드인사라며 보수언론의 공격 빌미가 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민간에 맡겨도 사실상 심사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문체부 산하기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 부처보다 덜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 밀접하기 때문에 작지만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형식적인 공모와 심사의 단계에 소요되는 돈과 인력 모두가 낭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분야별로 인력풀이 매우 좁은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한다면 공정한 심사위원을 구성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권력의 압력과 회유가 동원된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따라서 개방직 공모 심사와 더불어 문화예술 지원에 있어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도 블랙리스트를 없애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번 정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새 정부가 안고 갈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지원은 사실상 전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따라서 관심과 감시도 느슨했고, 결국엔 블랙리스트라는 독버섯을 키우는 음습한 환경으로 방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간을 압박하기에는 매우 유효한 방법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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