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홍아란(청주 KB스타즈)의 임의탈퇴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 생각은 ‘이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정규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소속팀이 리그 최하위에서 허덕거리고 있고, 자신의 빈자리를 팀 동료들, 특히 같은 포지션인 가드 심성영이 거의 매 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메워주고 있는 상황에서 팀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그 어떤 말하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자프로농구 일선 지도자들과 언론들의 반응도 다를 것이 없었다. 여러 언론에서 다양한 기사와 칼럼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선수들의 팀 이탈과 임의탈퇴 소식보다 홍아란의 임의탈퇴가 더욱 더 큰 이슈가 된 것은 홍아란이 여자프로농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그 어떤 선수보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선수였다는 점 때문이다.

홍아란의 경기 모습(흰색 유니폼).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자농구 특별시’로 불리는 청주를 연고로 하고 있는 KB스타즈에서도 홍아란은 단연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기량 면에서도 팀의 주전이자 주축이었지만 예쁘고 귀여운 외모로 ‘청주 아이유’라는 별명을 얻으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다.

팀 내 위상과 입지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부진에 빠진 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크나큰 사랑을 보내준 팬들에게 단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팀을 이탈한 홍아란의 프로의식 결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편으로는 선수의 임의탈퇴 요구와 임의탈퇴 후 선수의 변심으로 팀에 복귀할 경우 이들의 복귀의사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여자프로농구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프로에서 경쟁을 펼칠 만한 선수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여자농구의 현실, 프로 무대에서는 선수가 ‘갑’이고 구단은 ‘을’이다.

선수들의 선발이나 기용 그리고 연봉 협상, 트레이드, 기타 각종 처우의 문제에 있어 구단이 선수에 대해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경기를 펼칠 선수들이 농구 코트 자체를 등지는 상황 이 비일비재한 국내 현실에서 구단과 선수의 관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홍아란의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래서 한 지도자는 “여자 선수들에게 가장 큰 무기는 은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운동이 좀 힘들과 구단에서 제공하는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들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홍아란 전에도 아직은 은퇴를 입밖에 내기 민망한 멀쩡하게 젊은 선수가 은퇴를 선택한 예는 많았다.

단순히 프로에 입문한 이후 연차가 올라가는데도 불구하고 기회를 언지 못한 선수들이 조기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코트를 떠나는,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팀의 주축 선수 내지 중요 식스맨으로 활약할 만한 선수들이 나름의 이유로 돌연 코트를 떠난 일도 적지 않았다.

매 시즌이 종료된 이후부터 다음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선수들의 심리는 요동친다. 지난 시즌 자신의 활약상이나 코칭스태프들로부터 얻은 기회의 양과 질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농구에 대한 열정을 넘어서게 되면 선수들은 흔들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이나 동료, 선배들의 설득으로 마음을 다잡게 되면 다음 시즌에도 코트에 서게 되지만 그런 설득이 무위에 그치면 선수는 예정된 임의탈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진통을 거쳐 임의탈퇴의 길로 들어선 선수들의 상당수가 자신이 기대한 제2의 인생과는 거리가 먼 상황 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던 선수가 카페나 피자가게에서 60-70만원 월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존재감이라는 측면에서 코트 밖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선수들이 느낄 당혹감과 선수들의 이런 현실을 알게 된 팬들이 느낄 황망함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여자프로농구 무대에서 계속되는 전도유망한 선수들의 임의탈퇴 행렬과 사회에서의 쓰디 쓴 경험을 뒤로하고 선수로서의 몸이 망가진 상태로 코트로 복귀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연맹과 구단, 선수들이 어떤 발상의 전환과 실제적인 노력이 필요한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해볼 필요가 있다.

홍아란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2014-2015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홍아란(왼쪽)과 신지현이 노래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자프로농구 선수들의 임의탈퇴 문제에 대한 논란이 과거와 달리 이처럼 뜨거운 이유는 주인공이 홍아란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큰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던 홍아란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랄까…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임의탈퇴 과정에서 보여준 홍아란의 태도는 분명 프로의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직업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홍아란이 농구를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므로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 홍아란의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한다.

또 홍아란이 농구공을 다시 잡는 것 역시 홍아란의 자유다. 복귀하는 팀이 KB스타즈이건 아니건 간에 홍아란은 언제나 코트 복귀를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복귀하는 팀이 KB스타즈가 아니라면 원소속팀인 KB스타즈의 이적동의서가 있어야 하지만 이적동의서를 받아낼 수만 있다면 홍아란은 언제고 코트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플레이어로서 자신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코트를 떠났던 데 대한 비판적 평가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홍아란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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