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누가 더 ‘막장’인지를 경쟁하자는 투의 내홍에 빠졌고, 여기서 갈라져 나온 개혁보수신당은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대권주자의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역시 보수정치의 메시아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사실만 거듭 확인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은 5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정강정책 가안을 발표했다. 애초 예상됐던 대로 새누리당에 있던 때와 비교해 일정 정도 이상의 ‘좌클릭’을 감행한 모습이 눈에 띈다.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해야 하지만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규제는 철저히 해야 하고, 재벌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전략을 추구해야 하며, 금융시장에 대한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와 개별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제 도입 부분도 눈에 띈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존중’이라는 부분이다. 기성 보수정치가 가장 금기시했던 내용까지 포용한 것이다.

개혁보수신당의 이러한 거침없는 행보에 비해 아직 지지율은 기대에 미달한다. 한국갤럽이 2017년 1월 4일부터 5일까지 전국 성인 1004명에게 현재 지지하는 정당을 물은 결과(전화조사원의 인터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개혁보수신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0%, 국민의당은 12%, 새누리당 역시 12%, 정의당 4%, 무응답 26%가 나온 걸로 볼 때 분명 ‘돌풍’을 일으키는 수준은 되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

단순한 수치의 문제 뿐 만이 아니다. 최근 새누리당을 탈당했거나 탈당 예정인 걸로 알려진 주요 인사들이 개혁보수신당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은 신호다. 5일 원외당협위원장들과 새누리당 탈당해 개혁보수신당행을 선택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날 창당발기인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역시 보수정치의 대권주자 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이는 ‘이상징후’다. 탈당 직전 방향을 틀어버린 나경원 의원은 아직도 새누리당에 눌러 앉아있다. 과거 대권주자로 분류됐던 정몽준 전 의원은 새누리당을 탈당했지만 개혁보수신당 입당은 고려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새누리당을 탈당하겠다는 입장인데 개혁보수신당 입당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 정치 행보에 제한이 있는 전직 대통령이나 경영 복귀라는 옵션을 갖고 있는 기업인의 행보를 통해 개혁보수신당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다. 개혁보수신당에 대한 불안함이 증폭되는 것에는 주요 대권주자의 지지율 문제가 있다. 앞서 정강정책 가안에서 본 것처럼 이 당은 ‘좌클릭’을 감행하고 있는데, 이를 주도하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볼 때 유승민 의원이다. 새누리당 탈당의 한 축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제2의 백의종군’을 언급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결국 유승민 의원이 당의 얼굴이 된 셈인데 대권주자로서 그의 지지율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는 수치다. 5일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가 1월 2일부터 4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5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조사 결과(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2.5% 포인트, 응답률 21.3%,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유승민 의원에 대한 대선주자 지지율은 3.0%에 불과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28.5%,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4%, 이재명 성남시장은 10.2%,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6.7%, 안희정 충남지사 5.8%, 박원순 서울시장 4.7%,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3.5%였다.

물론 단순히 대권주자에 대한 지지율을 가지고 정치세력의 미래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보수정치의 동력이 대선 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부정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자면 유력대권주자를 내세울 수 없는 상태의 보수정치 세력은 2017년의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개혁보수신당의 입장에서 ‘간판’인 유승민 의원이 이 지경이라면 다른 대권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오기라도 해야 한다. 익히 알려졌듯 이 주요 대상은 반기문 전 총장이다. 유승민 의원 측의 대권전략도 반기문 전 총장을 ‘모셔온’ 후 경선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콘텐츠를 알려 반전 기회를 잡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일(현지시간) 뉴욕의 공관을 떠나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반기문 전 총장을 기다리는 세력이 개혁보수신당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인명진 대 서청원이라는, 쉽게 상상해볼 수 없었던 대결구도의 내홍에 휘말린 상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극단적 비난을 이어가며 거의 ‘막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서청원 의원 둘 중 하나가 당을 나가지 않으면 이 사태가 종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끝까지 버티면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나가지 않을 방도가 없다. 서청원 의원 등의 구상은 보수본류라는 이념적 지향과 대구경북이라는 지역 기반을 갖고 버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친박계끼리도 분열양상을 보이면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 의원을 제외한 친박계 의원들은 슬그머니 인명진 비대위원장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자신들의 거취를 인명진 비대위에 ‘백지위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서청원 최경환 의원은 이런 구도에서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친박계가 분열되는 이유는 개혁보수신당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는 거다. 반기문 전 총장의 입장에서는 제3지대 관망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이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결국 현실 정치세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혁보수신당이 바람을 타고 있다면 유승민 의원 등과의 경선에 참여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인명진 비대위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소속 의원 다수의 구상은 서청원, 최경환 의원을 정리하고 당명을 바꾸는 등 새단장을 한 후에 반기문 전 총장을 또 ‘모셔오겠다는’ 시나리오에 가깝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왼쪽)과 서청원 의원 (연합뉴스)

결국 보수정치의 입장에선 반기문 전 총장이 ‘메시아’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이 문재인 대 반기문이라는 양자대결구도를 굳어지게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 반복 언급하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정계개편은 반기문 전 총장이 여기에 합류할 경우에 파괴력이 극대화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물론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3자구도의 대선이 진행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야권에서 2명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출마하는 그림보다는 오히려 보수정치의 분열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상황인 것 같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행보를 보면 그렇다.

한겨레는 5일 정부가 국민의례 관련 규정을 개정해 국민의례시 묵념 대상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만 국한하도록 했고 이에 대한 각 지자체의 협조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4·3, 4·19, 5·18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묵념은 관련 행사가 열리는 경우에만 가능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묵념도 마찬가지다. 야권은 국민이 슬픔을 표현하는 것까지 국가기 규정하려 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논란의 또 다른 축은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이러한 훈령 개정에 나선 것이 적절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황교안 총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굳이 이런 일을 해서 논란을 키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이것도 대권행보와 연결해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보수세력의 적통을 자처하며 새누리당 지지층에 호감을 얻어 반기문 전 총장을 영입하지 못한 경우의 대체제로 활약하려는 계산 아니냐는 이야기다.

반기문 전 총장이 나라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내놓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이게 한국 정치에 다행인 일인지 불행인 일인지도 말하기 어렵다. 즉 반기문 전 총장이 보수정치의 메시아가 돼있는 이 상황 자체가 한국 정치의 파탄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다. 야권은 이제 이런 파국적 정치를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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