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다수의 민간인을 사찰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무사 소속 군인의 수첩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 수첩은 지난 5일 평택 쌍용차노조 농성장에서 집회를 사찰하던 신 모 씨가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민간인에 해당하는 십여 명에 대한 날짜별, 시간별 행적들로 빼곡히 채워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 7월 22일 09:10 사무실 들어감->16:30 OO아파트 들어감(△△△동 지하 주차장)->17:26 주차장 나옴->18:45 사무실들어감
B씨. 1월 11일 09:20~40 △△마트(내의 구입)->10:20 이스타나 77러XXXX->11:20 들어감(하우스)

한겨레는 “민간인 사찰이 경찰의 협조 아래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수첩의 7월 24일치 메모에는 ‘다음 주부터 경찰 동행’이란 문구가 명시됐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인 사찰이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수첩에는 △고급아파트 출입 시 소형차로는 입장이 곤란하므로 중장기 예산반영, △필요장비 탑재된 승합차 도입, △전세자금을 활용한 거점 확보 등의 ‘요구사항’이 들어있었던 것을 그 예로 들었다.

▲ 8월 13일자 한겨레 3면 기사
그러나 기무사 측은 신 모 씨가 쌍용차 집회에 간 이유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휴가 장병들의 집회 참가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이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모든 활동은 기무사 수사권 범위내에서 진행된 것이며 “수첩 내용 또한 민간인 사찰과는 별개로 군과 관련성이 있다”고 전면 부인하고 나왔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해명은 정황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동영상 어디에도 짧은 머리의 젊은 남자를 쫓는 모습은 없었을 뿐더러 “누굴 기다리는 것 같은데, 버스를 타게 되면 (우리도)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은데요. 쫓아가야 하니까”라는 음성이 포함된 영상속의 주인공은 민주노동당 당직자였다. 또한 수첩에 민노당 서울시당 행사일정표가 끼어 있기도 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에 해당된다. 현행 군사법원법에서는 기무사의 민간사찰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기무사측의 해명은 해명이라고 보기엔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무사 민간사찰’을 진실공방으로

KBS <뉴스9>는 ‘민간사찰’은 진실공방일 뿐(?) : KBS는 앵커를 통해 “기무사가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사찰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무사가 즉각 반박하면서 진실 공방이 뜨겁다”고 전했다. 뉴스의 프레임 자체를 ‘진실공방’에 맞췄다. 뉴스의 마지막 역시 “민노당은 군 관련수사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고 있고 기무사는 신 대위 폭행자가 드러나면 고발하겠다면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뉴스의 제목은 “‘민간 사찰’ 진실 공방”이었다.

▲ 8월 12일 KBS '뉴스9'ⓒKBS
SBS <8시뉴스>는 ‘민간사찰’을 “이정희 의원 대 기무사”란 대결구도로 : SBS는 ‘진실공방’라고 명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무사의 ‘민간사찰’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그들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며 ‘이정희 의원’ 대 ‘기무사’라는 둘 간의 대결구도로 구성했다. 앵커 역시 “이정희 의원이 국군기무사가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고 군은 적법한 수사 활동이었다며 곧바로 반박했다”고 전했다. 뉴스의 끝에서도 역시 “양측의 주장이 이처럼 첨예하게 맞서”라고 규정했다.

▲ 8월 12일 SBS '8시뉴스'ⓒSBS
MBC <뉴스데스크>는 “입장이 다른데 똑같이 다뤄줘야지”(?) : MBC는 굳이 따져보면 ‘진실공방’도 ‘이정희 의원 대 기무사’라는 ‘공방’으로도 구성되지 않았다. 앵커는 “민주노동당이 국군기무사령부가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사찰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어서 “기무사 측은 정상적인 직무 범위에 드는 일이라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기무사가 민간사찰을 했다”는 이정희 의원의 주장도 충분히 다뤘고, “민간사찰이 아니다”라는 기무사 측의 해명 역시 충분히 다뤘다. 그저 반으로 나누어 앞에는 이정희 의원의 주장을 뒤에는 기무사의 해명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 8월 12일 MBC '뉴스데스크'ⓒMBC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본질’ 피해간 지상파 보도

이정희 의원이 ‘기무사가 민간사찰을 했다’고 주장했다. 단지 주장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증거까지 제시하고 나왔다. 관련해 기무사는 ‘아니’라고 KBS와 SBS말대로라면 ‘반박’을, MBC의 말대로라면 ‘해명’이란 것을 했다.

KBS는 “이 수첩에는 민노당 당직자, 시민단체 회원 10여 명의 행적이 날짜별, 시간대별로 자세히 적혀있다”고 보도했다. SBS도, “수첩에 적힌 메모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순 없지만 군사기밀 유출 등 군 관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기무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뉴스 속에 등장한 사찰대상은 기무사가 반박한 것처럼 군과 관련해 수사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MBC도 “(기무사가) 택시를 타면 택시번호판까지 찍으면서, 사무실에 들어가고 나온 시간, 내의를 사고, 새벽에 노래방 간 것까지 사생활도 일일이 추적했다”고 전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KBS와 SBS 그리고 MBC의 뉴스만 보더라도 기무사의 ‘반박’ 내지 ‘해명’은 충분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진실공방’이라고, SBS는 ‘이정희 의원 대 기무사’의 대결구도로 보도했다. 또한 MBC는 양 측의 입장을 동등하게 다루며 본질을 피해갔다.

이명박 정부 1년 6개월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그 요지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에는 ‘공안통’이라 불리었던 천성관 후보자를 지목했었다. 그리고 현재 국회에는 국가정보원이 직접 감청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의 권한이 크게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이정희 의원에 의해 ‘기무사의 민간사찰’ 건이 터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 뉴스는 면밀한 분석 없이 얼토당토 않는 기무사의 변명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기계적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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